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서 나오는 김정은 과장. ⓒ시사IN 신선영

소아청소년과 위기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의료계 전문가 여럿에게 “김정은 선생을 만나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들과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애정이 크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의사라는 것이 추천 이유였다.

김정은씨는 26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다. 충주 건국대병원에서 조교수로 근무했고, 서울 중구보건소에서도 일했다. 한때 본인 이름을 딴 소아과를 개원한 적도 있다. 지금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인근의 공익적 민간병원인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환자들을 보고 있다. 1차-2차-3차 병원, 그리고 의대 교수·개원의·봉직의까지 한국의 소아 진료 현장을 두루 누볐다.

매번 밤 8시가 넘어서야 연락이 되었다. 아침 8시30분부터 외래 진료를 시작해 입원 병동 회진을 돌고 나면 그 시각이다. 틈틈이 소아 응급환자가 오면 콜을 받고 응급실에 뛰어 내려갔다 오는 것도 그의 일이다. 취재 요청을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했다. 소아과의 위기가 깊어지면서 의사 사회도 날이 서 있다.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는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들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지쳐가고, 개원의들은 의원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서 폐과 선언을 한다. “돌아보니까 제 경력이 짧지가 않더라고요. 책임이 있구나 싶었어요.”

5월1일 신천연합병원 인근에서 김정은 과장을 만났다. 노동절인 이날 병원은 쉬는 날이었지만 입원 병동 회진을 돌고 오는 길이었다. 3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자주 지쳐 보였고, 또 그만큼 자주 눈을 반짝였다. 고질적인 의료수가 문제, 소아 진료의 어려움에 대해 들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는 ‘소아·청소년 건강의 안전망’이라고 쓰인 도표를 들이밀었다.

소아·청소년 건강의 안전망이요?

소아과 위기에 관해 논의할 때 지향점을 잘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강하게 자라는 체계를 만들고 싶은 마음인 거잖아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몇몇 단편적 대책들이 아니라) 소아·청소년 건강의 안전망을 돌아보자는 거예요. 어디에서 무얼 놓치고 있는지 얘기해보자는 거죠.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생각보다 다양해요. 사는 곳, 공부하는 곳, 노는 곳, 식사를 제공받는 곳 등등. 의료는 아이를 지키는 안전망에서 하나의 축일 뿐이에요. 소아 진료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전반적인 돌봄 체계의 틀 안에서 아이를 봐야 해요.

그가 직접 그린 도표에는 중심에 동네의원(1차 의료)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림〉 참조).

소아청소년과(소청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전공의 미달 사태였죠. 그동안 전공의들이 휴일 없이 밤낮으로 환자를 봤는데 소청과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수년째 줄어드니까 대학병원이 소아 응급, 입원 진료를 중단하면서 피부로 와닿기 시작한 거잖아요. 그런데 소청과 문제는 사실 1차-2차-3차 병원이 모두 연결돼 있어요.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소청과 의원(이하 동네의원)에서 정상적인 진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여러 문제들이 많이 완화될 수 있어요.

소아 1차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요?

소청과만 그런 건 아니에요. 콧물이나 가벼운 발열 환자들도 상급종합병원 외래진료, 응급실로 많이 가잖아요. 한국 의료는 전체적으로 병원 기능이 뒤섞여 있죠.

소아 진료에 한정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동네의원이, 즉 1차 진료가 제 기능을 다 한다면 대부분의 소아 환자가 여기에서 흡수돼요. 중증 환자를 봐야 하는 3차 병원이나, 중등증 환자를 받는 저희 병원 같은 2차 병원 외래까지 올 이유가 없어요. 또 불안해하는 보호자들을 충분히 상담하고, 교육하고, 육아 조언도 해줄 수 있어요. 그러면 의료 수요에서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분도 줄일 수 있어요. 소아·청소년 건강의 안전망이라는 틀에서 보면 위기 가정, 아동학대의 징후를 빠르게 캐치해서 알람을 울릴 수 있는 곳도 동네의원이고요.

이렇게 정상적인 1차 진료가 이루어지려면 소위 ‘3분 진료’로는 안 돼요. 그래서 이번에 정부가 소청과에 ‘심층상담 수가’라는 걸 신설했어요. 소아과 의사들이 수가가 너무 낮다고 하니, 그리고 육아에 충분한 전문성을 발휘해도 진료비에는 반영이 안 되니 심층상담 수가를 도입한 거예요. 그런데 이게 소아과 진료실에 적용되는 순간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돼버려요.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아동 일차의료 심층상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36개월 미만 영유아에게 15~20분가량 심층 교육과 상담을 제공한 소청과 의사는 기존 진료비 수가(1만9000원)보다 높은 심층상담 수가(5만원)를 지급받게 된다. 아동 한 명당 1년에 최대 세 번 ‘심층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층상담 수가를 받으려면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할 때 수가 코드를 넣어야 돼요. 이 코드를 넣으면 ‘이때부터 몇 분간 상담해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어요. 보호자도 아이가 일반 진료 볼 때는 나이에 따라 몇백 원가량 내던 본인부담금을 1만원 정도까지 내야해요. 이 제도를 이용해서 길게 상담하려면 이렇게 되는 거죠. “엄마, 지금부터 심층상담할 거예요. 본인부담금이 얼마고요. 이거에 동의하실 겁니까? 그럼 여기 사인하세요. 자 이제부터 시간 잽니다.” 그러면 보호자는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겠죠. ‘이거 갑자기 뭐지? 약 파는 건가?(웃음)’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어린이와 보호자. ⓒ시사IN 신선영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어린이와 보호자. ⓒ시사IN 신선영

현실적으로 소아과 진료실에서 적용하기가 쉽지는 않겠네요.

시범사업이라 의료기관을 모집하는데, 저는 신청하지 않았어요. 자칫하면 의사와 보호자 사이에 쌓아왔던 ‘라포(신뢰)’가 깨질 수도 있거든요. 소아과에서는 진료와 심층상담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감기약을 타러 온 아기인데 엄마가 계속 질문을 하기 시작해요. ‘애 먹는 거는 어떡하죠? 싸는 거는 괜찮나요? 여기 한번 봐주세요.’ 원래부터도 소아과 의사들은 그런 상담을 다 해왔어요. 아이는 아픈 곳만 특정해서가 아니라 통으로 봐줘야 해요. 소청과 수련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배우는 내용이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이다. 아이의 성장 발달은 어른과 다르다. 아이는 어른 환자처럼 현재 증상만이 아니라 변화를 봐줘야 한다’라는 거예요. 소아과 진료실에 있으면 예방접종 때 보호자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해요. 접종하는 날은 아파서 오는 게 아니잖아요. 해피한 아이들을 옆에 두고 보호자들은 궁금했던 걸 물어보고, 우리는 여기저기 살펴보고. 그런데 이날 청구할 수 있는 수가는 예방접종 주사 행위료(1만9000원)가 전부예요. 아이가 아파서 왔을 때보다 진료를 훨씬 더 충분히 했음에도 표도 안 나지, 증거도 없지 그러니 빵 원이에요(웃음).

소아과 의사들은 대체로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역할을 해왔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도 빠지고 깎여나가는 거죠. 만약 환자 한 명당 10분 정도를 진료하면 한 시간에 6명, 하루 50~60명을 보게 되잖아요. 소아과는 진료비가 수익의 거의 전부인데, 임차료도 내야 하고 최소 한 명의 간호조무사 월급도 나가야 해요. 사실상 인건비도 남기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소청과 진료비 수가를 전반적으로 높여야 하는 건가요?

이게 참 항상 앞에 말을 ‘이따만큼’ 해놓으면 결국은 돈 얘기처럼 돼버려요(웃음). 건보료든 세금이든 공적 자금이 쓰이게 되니 합당한 선이 어디인지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해요. 다만 소아과 의사들이 수가가 너무 낮아서 정상적인 진료가 어렵다고 했을 때 ‘심층상담 수가’ 같은 형태를 바란 건 아니었어요. 같은 진료라도 소아과 의사의 전문성을 믿어달라는 거였어요. 꼭 (심층상담 수가) 코드를 넣지 않아도 기본적인 진료비가 보장된다면 소아과 의사들이 아이의 상태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발달 단계에 따라 충실한 진료를 할 수 있어요.

물론 이건 쌍방 간의 믿음이에요. 소아과 의사들도 노력해야 돼요. 우리도 그만큼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어요. ‘니들도 3분 진료 하면서 약 주고 땡이던데’ 라는 인식이 있으니까 하루 약 먹이고 감기가 떨어지질 않으면 다른 의원 가는 식의 닥터 쇼핑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천연합병원이 참여하고 있는 아동 지원 사업 '작은별 프로젝트'. ⓒ시사IN 신선영
신천연합병원이 참여하고 있는 아동 지원 사업 '작은별 프로젝트'. ⓒ시사IN 신선영

지금 몸담고 있는 신천연합병원은 2차 종합병원입니다. 1차 의원을 개원했다가 2020년 다시 신천연합병원으로 돌아왔어요. 뜻한 바가 있는 건가요?

전체 의료시스템에서 1차 의원과 3차 상급종합병원을 이어주는 허리가 2차 병원이에요. 그런데 한국 의료계에서는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의료가 소아·청소년을 둘러싼 안전망의 한 축이 되려면 2차 종합병원이 동네 커뮤니티의 거점으로 튼튼하게 서 있어야 해요. 소아과 진료실에서는 신체적 문제에 집중하지만 아이가 아픈 이유는 다층적이에요. 예를 들어 아빠가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된 집이 있어요. 가정 형편이 기우니까 돌봄도 소홀해지고 아이는 여기저기가 자주 아픈 거죠. 그런 아이가 우리 병원 소청과에 오면 아빠는 정형외과로 진료 의뢰를 할 수가 있죠. 지역에 좋은 종합병원이 뿌리 내리면 한 가족을 돌볼 수 있어요. 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해서 지원할 수도 있고요.

소아과에서 외래를 보면 더 들어가고 싶은 가족들이 있어요. 모든 소아과 선생님 눈에는 들어와요.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엄마도 울고 애도 울고. 툭 터져요. 그런데 시간에 쫓기는 데다 감정만 소모시키고 도움 줄 방법이 없으니 못 건드려요. 개별 동네의원으로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그런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게 신천연합병원으로 돌아와서 시작한 ‘작은별 프로젝트’예요. 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돌봄, 교육, 놀이·운동, 영양, 그리고 의료 자원을 연계하는 거예요. 신천연합병원의 마을건강센터가 등록·관리·의뢰 등 전반적인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대형병원들도 소아 응급과 입원 진료를 중단하는 케이스가 늘어나는데 신천연합병원은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2차 병원의 본래 기능이에요. 환자를 경증-중등증-중증으로 분류했을 때 중간 정도 난이도의 중등증 환자들의 입원과 응급진료를 2차 병원에서 맡아야 해요. 그래야 3차 병원의 의료자원 낭비도 막을 수 있어요. 제가 이 병원에 꽂혀서 일한 건 입원 환자를 볼 수 있어서예요. 시흥시 북부에서 소아 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여기밖에 없어요. 시흥이랑 인접한 인천이나 부천의 대학병원에 입원해도 되지 않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입원한 아이를 따라서 보호자가, 주로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울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가정도 많아요. 그러면 최대한 미루다가 아이 상태가 심각해져서야 병원에 데려가는 거예요. 신천연합병원의 소아 입원과 응급 진료 기능은 꼭 유지를 해야 돼요.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병동에 입원했던 보호자가 김정은 과장에게 남긴 카드. ⓒ시사IN 김연희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병동에 입원했던 보호자가 김정은 과장에게 남긴 카드. ⓒ시사IN 김연희

소청과 외래진료부터 입원, 응급환자까지 혼자서 보고 있는 거죠?

원래는 우리 병원 소청과가 1진료실, 2진료실 이렇게 두 개였어요. 올해 1월에 같이 계시던 선생님이 나가고 계속 의사를 구하고 있는데 어렵죠. 대학병원에서도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입원전담 전문의를 많이 뽑고 있는 데다 2차 종합병원이 소청과 전문의들 눈에 썩 좋은 일자리는 아니에요. 우리는 공익적 민간병원이라 의사들 기준으로는 봉급이 낮은 편이기도 하고요. 사실 2차 종합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를 두 명씩 두는 건 상당한 투자예요. 소아과는 진료비로 벌어들이는 수익 이외에는 비싼 약도 없고, 비싼 검사도 없잖아요. 반면에 추가로 써야 하는 비용들은 많아요. 아이들은 링거 바늘을 꽂을 때도 성인과 달리 움직이지 않게 잡아야 하니까 간호사가 적어도 둘은 있어야 돼요. 낙상 방지를 위해 가드레일이 올라오는 소아 전용 침대도 필요하고, 원내용으로 링거를 매달 수 있는 유아차도 따로 구비해요. 병원 입장에서는 다 추가 지출이죠. 병원도, 의사도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에요.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정은 과장이 소아 입원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정은 과장이 소아 입원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정은 과장이 응급실에서 발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정은 과장이 응급실에서 발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어떤 사람들이 소청과 의사가 되나요?

잠깐 개인 얘기를 해도 되나요(웃음). 의대 졸업하고 1년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병원의 여러 과를 돌잖아요. 신생아 중환자실에 갔을 때였어요. 인큐베이터 안에 요만한 아기가 있는데 소청과 레지던트(전공의) 선생님이 ‘밤새 얘 등을 때려줘’ 그러는 거예요. 밤을 새우라니까 처음에는 투덜투덜 했죠. 아기들 가래를 빼주거나 트림 시킬 때 집에서도 쓰는 ‘팜컵’이라는 게 있어요. 인큐베이터에 손을 넣어서 그걸로 통통통 밤새 때려주는 거예요. 어른들은 흉벽이 두꺼워서 안 되지만 아기들은 이렇게 쳐주면 액액액 기침을 하면서 폐가 살살 풀려요. 그날 밤이 지나고 사진을 찍었더니 진짜로 폐가 더 펴진 거예요. ‘와 되게 신기하다. 이거는 의사로서 보람이 있겠다.’ 그러면서 그 아기가 너무너무 예뻤죠. 애들은 화분에 물 주듯이 제때 적절한 조치를 해주면 ‘짜잔’ 하고 살아나요. 그게 소아과의 엄청난 매력이에요.

제가 거기 빠져서 정작 저희 큰애는 몇 번을 놓칠 뻔했어요. 첫째 임신했을 때 충주 건대병원 조교수로 가게 됐어요. 2002년이었는데 지역 대학병원들은 그때부터도 교수가 당직을 섰어요. 제가 계속 동동거리고 다니니까 애가 뱃속에 있는 동안 한 번도 태동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온 날이었어요. 아직 37주인데 몸에 무리가 갔는지 새벽에 양수가 터졌어요. 응급 제왕절개로 우리 애가 태어났죠.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신천연합병원에 처음 왔을 때가 첫째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큰애의 초등학교 생활 6년이 제 머릿속에 없어요.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적응하는 데에 한동안 애를 먹었어요. 그때 머리를 빵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내가 얘를 또 놓쳤구나.’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저처럼 하면 안 돼요. 혹여나 제가 헌신적이거나 귀감처럼 비춰져서는 안 돼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갈아 넣지 않고 소아과 의사로서 뜻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에요.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서 소아 진료가 주요 과제로 꼽혔습니다.

소아 상시 진료체계 유지, 소아응급, 공공정책수가 등등 모두 의료 현장의 요구가 반영돼 있는 필요한 정책이에요. 그런데 이 대책들이 러프하게 제시돼 있는 상태예요. 구체적으로 예산과 지원이 어디로 갈지가 중요한데 쭉 살펴보면 결론은 대부분 3차 병원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지금 대학병원의 소청과가 마비 수준이니 거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십분 동의해요. 전공의가 안 들어오는 걸 걱정하는데 사실 시급한 문제는 전공의가 아니라 교수조차 버티기 어렵다는 거예요. 다들 번아웃이고, 나가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그걸로 ‘소청과 위기’를 해소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증 환자를 보는 상단만 남아서는 소아 진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어요. 제 기본적인 관점은 소청과 전문의가 갈 곳이 다양해져야 관심과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교육수련위원회에 전공의 제도에 대한 제언을 하고 싶어요.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에는 다른 과보다 많은 간호조무사 3명이 배치돼 있다. ⓒ시사IN 신선영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에는 다른 과보다 많은 간호조무사 3명이 배치돼 있다. ⓒ시사IN 신선영

어떤 제언인가요?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이 전공의 시스템을 바로잡을 과도기이기도 해요. ‘전공의를 못 구해서 대학병원 소청과가 안 돌아간다’가 아니라 전문의 중심으로 3차 병원 시스템이 재구축돼야 해요. 전공의는 소청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배우고 수련받으러 온 사람들이잖아요. 주치의로서 환자를 맡아야겠지만 적정한 수의 환자를 배정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환경을 마련해줘야 해요. 두 번째로 수련 과정에서 여러 일자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해요. 소청과 전문의가 100명이 배출된다면 대학병원에 남는 건 1~2명 정도예요. 여기로만 진로를 한정하면 길이 너무 좁죠. ‘소아·청소년의 건강 안전망’이라는 틀에서 보면 소아과 의사가 뜻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려요. 대학병원에서 희귀 난치병, 중환자, 응급환자, 전문 과목을 배운 소청과 전공의가 2차 종합병원에서 몇 달 정도 수련을 받으면 새로운 시야가 열려요. 진료의 질적인 확장이라고 할까요.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살피고, 지역의 자원과 연계하는 법을 배우고, 2차 병원에서는 어떤 중증도의 환자를 보는지도 익히고요. 만약 우리 병원에 전공의가 온다면 소아과 의사가 지역에서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싶어요.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팔에 링거를 꽂은 어린이. ⓒ시사IN 신선영
4월29일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팔에 링거를 꽂은 어린이. ⓒ시사IN 신선영

출생아 수 감소를 고려하면 소청과의 미래가 밝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타개할 명쾌한 해법은 없죠. 내년부터 갑자기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지도 않을 거고요. 그래도 소청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올 거예요. 결국은 아이들이 좋고,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고, 안전하고 행복한 성장을 돕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 거잖아요. 소청과가 가야 할 방향은 이런 꿈을 품고 온 젊은이들이 보람을 갖고 정상적인 진료를 하면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자 좋은 자리가 돼주는 거죠. 어떤 이슈를 대할 때 가치를 잃으면 답이 안 나와요. ‘소아과 의사를 살려달라’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소아들에게 충분히 투자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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