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0일 MLB 보스턴 대 볼티모어의 경기에서 ‘피치클록’이 5초를 가리키자 볼티모어의 구원투수 로건 길라스피가 투구를 시작하고 있다. ⓒAP Photo
3월30일 MLB 보스턴 대 볼티모어의 경기에서 ‘피치클록’이 5초를 가리키자 볼티모어의 구원투수 로건 길라스피가 투구를 시작하고 있다. ⓒAP Photo

야구가 빨라졌다. 세계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야구가 지루한 경기가 됐다”라는 지적에 두려움을 느꼈다.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 경기를 치르는 데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야구 경기는 너무 길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미국·일본·한국에서 젊은 세대가 장노년층에 비해 야구에 덜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2008년 딱 한 시즌 운영된 이스라엘 프로야구는 9이닝이 아닌 7이닝제 경기를 했다. 새로운 야구팬을 확보해야 하는 입장에서 긴 경기 시간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구 경기 시간을 줄이려는 시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거의 모두 실패했다. 메이저리그가 2017년 도입한 ‘자동 고의사구’도 그중 하나다. 투수가 공 네 개를 던지지 않고 심판에게 경원(고의사구) 의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타자가 1루로 걸어 나갈 수 있게 했다.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였다. 2018년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8분으로 전년 대비 4분이 늘었다. 자동 고의사구는 2018년 한국의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NPB)에도 도입됐다. 이해 KBO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전년도와 동일했다. NPB 센트럴리그에서는 7분, 퍼시픽리그에선 4분 늘어났다. “야구의 멋을 떨어뜨린다”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채택한 제도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2023년 메이저리그에선 ‘혁명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22년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6분이었다. 올해는 4월18일 현재, 2시간39분으로 무려 27분이나 줄었다. 메이저리그가 이번 시즌부터 채택한 ‘피치클록 룰’ 덕분이다.

새 규정에 따르면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1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주자가 있을 때는 20초 이내다. 제한 시간을 넘기면 볼 판정을 받는다. 구장 안에는 투수가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타이머 전광판을 설치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피치클록’이다. 타자도 8초 안에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이를 어기면 스트라이크 하나가 주어진다.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은 “투수와 타자에게 모두 의무를 지운다. 어느 쪽이든 준비를 늦게 하면 손해를 보도록 설계했다. 세부 사항을 일일이 규정하기보다는 당사자 상호 간 이익 경쟁으로 규정이 지켜지게 하는 미국식 시스템”이라고 해석했다.

야구 통계 사이트인 베이스볼서번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구라도 던진 메이저리그 투수는 860명이다. 평균 투구 간격이 15초 이하인 투수는 전체의 13.3%인 114명에 불과했다. 투수가 공을 건네받은 뒤 투구까지 걸리는 시간은 리그 평균 주자가 없을 때 18.1초, 주자가 있을 때 23.3초였다. 새 규정을 적용하면 공 1구당 3초 이상 단축된다. 메이저리그 한 경기 투구 수는 대략 300개다. 1구당 3초를 곱하면 900초, 즉 경기당 15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27분 단축은 기대 이상이다. 경기 시간이 예상을 뛰어넘어 줄어들자 밀워키 브루어스 등 4개 구단은 홈구장 내 맥주 판매 마감 시한을 7이닝에서 8이닝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KBO리그에도 비슷한 규정 있지만

KBO리그는 메이저리그보다 훨씬 앞서 투구 시간에 대한 규정을 두었다. 2004년부터 리그 규정에 ‘경기의 스피드업’ 항목을 신설했다.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12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시간 계측은 2루심이 초시계로 한다. 일명 ‘12초 룰’이다. 지금 메이저리그 규정보다 3초나 짧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2004년 경기 시간은 3시간8분으로 전년 대비 4분 줄었다. 하지만 이듬해 6분 늘어났고, 2014년엔 3시간27분으로 역대 최장 기록을 새로 썼다. 지난해에는 3시간15분, 올해는 4월18일 현재 3시간19분이다.

비슷한 규정인데 왜 KBO리그에서는 효과가 없었을까. 가장 큰 차이는 주자가 있을 때 12초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22년 프로야구 전체에서 5만5963타석이 기록됐다. 2만6341타석에는 누상에 주자가 있었다. 전체의 47.1%다. 절반 가까운 타석에서 투구 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으니 효과가 적다. 적용도 엄격하지 않았다. 투수가 12초 룰을 처음 위반했을 때는 바로 볼 판정을 하지 않고 1차 경고가 주어졌다. 시간 계측이 시작되는 시점도 다르다. 메이저리그 피치클록 룰에서는 ‘포수가 던진 공을 투수가 받은 시점’에 15초 타이머가 스타트한다. KBO리그에서는 ‘타자가 타석에서 준비되었을 때’부터 2루심이 초시계를 작동한다. 그리고 타자에게는 별다른 제한 규정이 없다.

신 분과장은 2016년 12월 KBO 윈터미팅에서 경기 시간 단축에 대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투구와 투구 사이 걸린 시간은 KBO리그가 25.6초, 메이저리그가 23.5초였다. 12초 룰을 적용하고 있던 KBO리그가 훨씬 더 길었다. 타석과 타석 사이 간격은 KBO리그가 52.3초로 메이저리그(43.5초)보다 8.8초 길었다. 이해 KBO리그 타석당 투구 수는 3.89개, 메이저리그는 3.87개였다. 공 개수 차이는 거의 없었는데도 한 타석에 소요되는 시간 차이는 컸다. 그만큼 시간 낭비가 일어났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오래전부터 야구 경기 시간 단축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 교수는 “경기 시간 단축이 경기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지금 프로야구 경기에 낭비되는 시간이 얼마나 많나. 낭비 시간을 줄여서 선수들의 플레이가 이뤄지는 인플레이 타임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긴 투구 간격뿐 아니라 느린 타격 준비, 잦은 견제, 벤치의 잦은 작전 지시 등이 경기를 지체시킨다. 어떤 야구인들은 관람석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 시간에 필드 안에선 많은 일이 일어나며, 여기에 야구의 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야구는 지금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기가 아니었다. 1901년 메이저리그 경기 평균 시간은 1시간49분이었다. 1953년까지는 2시간30분을 넘지 않았다.

김경문 전 NC 감독은 2015년 6월 잠실야구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144경기다. 한 경기에 10분을 줄이면 1440분이다. 1년에 하루를 더 얻는 셈이다.” 그 하루는 선수에게나 팬에게나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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