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이 1월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주말 늦은 밤, 한 공무원이 사무실에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폴더를 통째로 삭제했다. ‘디지털 발자국’을 지우는 작업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휴대전화에선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을 사용했다. 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데이터를 지웠다(디가우징).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은 삭제하고 대신 포렌식 방지 앱을 설치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 시절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과 관련된 공용 전자기록을 삭제·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2023년 1월9일). 이들은 2019년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에 착수하자, 청와대 보고 문건 등 자료 530건을 삭제하고 감사를 방해한 혐의 등을 받았다. 공무원들은 재판에서 “감사 협조를 위해 아이디어 수준 초안 자료, 불필요하고 헷갈리는 자료 등을 정리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무원들과 검찰 모두 항소했다.

2021년 9월2일 오후 8시16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대검 수정관실) 소속 검사·수사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사무실 컴퓨터 25대의 하드디스크를 전부 포맷했다. 10여 일 전 장비 개선 차원에서 새로 교체된 컴퓨터들이었다. 대검 수정관실 소속 임홍석 검사는 검찰 내부 정보통신과 직원들을 부르는 대신 직접 컴퓨터를 분리해 포맷 작업을 했다. 임 검사는 이후 자신의 휴대전화에 안티포렌식 앱도 설치했다. 같은 날 오전, ‘고발 사주 의혹’이 처음 보도됐다. 당일 논란이 확산되자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은 대검 감찰부에 대검 수정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의 디지털 흔적 삭제 정황은 고발 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의 재판에서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용 전자기록 손상,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임 검사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손준성 검사 측은 “PC 포맷 관련 보도들은 모두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임 검사는 기자들에게 “PC 25대 포맷 의혹은 명백한 허위다. 자료 삭제도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