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빌라 우편함에 1월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연합뉴스

물가가 많이 올랐다. 지난 9년간 소비자물가지수의 등락률을 나타낸 〈그림 1〉을 보자. 물가가 지금처럼 고공 행진한 적이 없었다. 2022년은 2021년보다 소비자물가가 평균 5.2%로 올랐다. 지난해 7월,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6.3%로 꼭짓점을 찍고 살짝 내렸지만 하반기 내내 5%대를 웃돌았다. 올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지난해 12월)보다 0.8% 더 올랐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올랐을까? 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을 품목 성질별로 나눠 나타낸 〈그림 2〉를 보자. 최근 많은 이들이 고지서로 체감했듯, 전기·가스·수도 요금 같은 공공요금이 눈에 띄게 많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8.3% 상승했다. 이제 시작이다. 공공요금 추가 인상이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은 물론이고 지자체별로 지하철·버스·택시 요금, 상하수도 요금, 쓰레기 종량제봉투 가격 등을 이미 올렸거나 올해 내 올릴 계획을 잡고 있다.

공공요금이란 (주로) 공기업이 생산해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다. 이 가격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인하·인상·동결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전기요금·도시가스 도매 요금·우편료·도로통행료 등은 중앙정부의 각 관할 부처가, 지하철 요금·상하수도 요금·도시가스 소매 요금·택시요금·정화조 청소료 등은 지자체가 각각 관리하고 인상폭을 결정한다.

수요와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일반 시장재와 달리 이 상품들은 국내 경제·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격이 ‘정책적으로’ 매겨진다. 원가가 올라도 경제 관련 수치가 나쁘면 동결되고, 공기업 적자가 쌓여도 선거를 앞두고선 인상이 보류된다. 사회적으로 ‘공공요금=저렴한 가격’이라는 인식이 굳어 있다. ‘공공요금은 낮을수록 좋다’ ‘공공요금을 올리는 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라는 명제 또한 대다수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과연 그럴까?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민생 ‘폭탄’일까? 어떤 측면에선 맞는 말이다. 공공요금 인상은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진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전력을 사용해 생산되는 기업의 상품가격도 높아진다. 도시가스 요금이 오르면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취사 비용이 높아지고, 비닐하우스 온도를 높이거나 목욕탕에서 물을 데울 때 사용하는 연료비 지출이 늘어난다. 다른 품목의 가격을 연쇄적으로 높이는 공공요금을 동결하면 물가안정에 도움이 된다.

공공요금 동결, 어떤 대가 따르나

공공요금 동결(할인)은 복지정책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소득분위 1분위 가구가 전기·가스 등 연료비에 지출하는 비용은 전체 소득 대비 18.6%(에너지경제연구원 2017년 통계)에 달한다. 고소득층인 10분위 가구는 버는 돈 중에서 1.81%만 연료비로 지출한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충격이 저소득층일수록 더 크다는 이야기다. 요금을 동결하거나 아주 적게만 올리면 복지 재원을 따로 들이지 않고도 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가가 뒤따른다. 원가가 오르는데도 공공요금을 동결하면 그 차이만큼 비용은 결국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빚지는 조삼모사이고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 미루는 무임승차이다. 한전의 부채, 가스공사의 미수금, 교통공사의 적자가 그 빚의 실물이다. 공기업의 부채는 지난해 한전채 사태처럼 금융시장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적자를 보는 공기업은 설비 개선 등 필요한 곳에 비용을 투자하지 못해 결국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저하된다. 적자 누적과 서비스 질 하락으로 공기업의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면 시장개방과 민영화 압력이 높아진다. 공공요금 동결은 오히려 이처럼 사회 필수재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요금이 낮으면 수요 절감의 동기가 시민들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아무리 공기업 부채, 기후위기, 탄소세를 경고해도 여름철 가게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트는 상점이나 겨울철 집 안에서 반팔 옷을 입고 지내는 소비자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해외(에너지원 수입)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한국의 에너지 가격이 큰 몫을 한다.

전기·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광주·전남 지역 단수 사태에서 목격했듯 물 또한 무제한 공급을 장담할 수 없다. 낮은 공공요금은 자원의 지속 불가능성을 깨닫는 데 장벽이 된다. 한국이 최근 전 세계 차원의 의제인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서도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고 기후대응 후발 주자에 머무르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다.

공공요금 동결(할인)은 또한 정의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공공요금을 인하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층은 저소득층이 아니다. 절대 소비량이 많은 대기업, 고소득층이 더 큰 이익을 얻는다.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47.7%를 4695개 에너지 다소비 사업자(연간 2000TOE 이상 사용)가 썼다. 절대 소비량이 많을수록 할인으로 얻는 이득도 크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에너지 요금 할인을 기본소득이나 재난지원금과 같은 복지정책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에너지 요금 할인은 오히려 구매력이 높은 층에 할인 혜택이 집중된다”라고 말했다.

석 전문위원은 2013년 고유가 시기 이집트의 정책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이집트는 물가관리 차원에서 에너지 공기업들을 통해 전기·가스·석유를 원가 이하로 판매하다가 총 35조원의 적자를 발생시켰고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받게 되었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의 요금 할인 혜택을 통해 대도시의 소득 상위 20% 소비자들이 소득 하위 20% 소비자보다 8배 높은 혜택을 가져갔다(Griffin, Laursen &Roberts, 2016).”

정부도 오래전부터 물가관리의 주요 방편으로 공공요금을 활용해왔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공공요금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그 범위 또한 재량권이 넓다. 각 공공요금마다 요금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물가관리의 책임이 있는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조항이 있어 독자적인 요금 결정이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 역시 문재인 정부가 재임 기간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고 비판하면서도, 이번 겨울 난방비 인상에 따른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시내버스·지하철·상하수도 등 7개 지방공공요금 인상을 늦추거나 최소화해 달라고 지자체들에 요청했다. 행정안전부는 2월7일 공공요금 감면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지자체에는 특별교부세 등 재정 지원을 확대해주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2월6일 버스요금 거리비례제를 통한 요금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가 시민 반발이 커지자 이틀 만에 검토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 용산구 쪽방촌의 입구가 얼어 있다. 취약계층은 공공요금 과다에 내몰리는 조건에 살기도 한다. ⓒ김흥구

공공요금 딜레마, ‘복지’에 답이 있다

여론의 지지를 받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 정부로서는 당장 공공요금을 인상하려는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정부의 입김이 너무 세면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공요금 결정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에서 공공요금을 관리할 독립적 요금 규제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이점은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박정호 명지대 산업대학원 특임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수도 요금 같은 공공요금을 낮춘 큰 이유는 수출경쟁력 때문이다. 가격경쟁력으로 외국에 제품을 팔아 달러를 벌어오는 선순환을 그리기 위해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성장률도 예전 같지 않고 가격을 희생시켜 수출을 증진할 여지도 줄어들었다. 더구나 이제 저렴한 에너지 가격은 탄소세와 탄소배출권과 같은, 신규 추가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싼 요금이 더 이상 싸지 않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공공요금은 싼 게 미덕이다’라는 인식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공공요금을 올리면 변화된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본다. 어떤 이들에게 공공요금 10% 인상은 조명을 자주 꺼야 하고 집 안에서 수면양말을 신어야 하는 불편 정도에서 끝나지만 어떤 이들에겐 생존의 문제가 된다.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못해 가구에 공급이 끊긴 경우가 지난해 12월 기준 2만6521건이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건은 2017~ 2021년 32만1600가구에 달했다. 취약계층은 공공요금 과다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단열이 나빠 냉골인 집에서, 에너지효율 등급이 낮은 ‘전기 먹는 하마’ 구형 가전제품을 사용하다 그야말로 에너지 요금 ‘폭탄’을 맞는다.

올리기도 겁나고 내리기도 두려운 이 공공요금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복지’에서 찾을 수 있다. 공공요금을 인상 요인에 맞춰 정상화하더라도 국가재정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면 그 충격이 상쇄된다. IMF는 지난 1월3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업데이트’에서, 각 국가 정부들에 “에너지 가격을 통한 에너지 수요 억제 효과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면서도 “최근 에너지와 식품 가격 급등으로 생계비 위기에 처한 취약계층을 정부가 신속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했다. 영국·독일·스페인 등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와 공공요금 급등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금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정부도 난방비 이슈가 떠오르고 난 뒤 에너지 바우처와 같은 에너지 복지 정책의 지원 범위와 예산을 늘리겠다고 급히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고 갈 길이 멀다. 정확한 지급 대상을 정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고, 정책 홍보 부족으로 지원 대상인 줄도 몰라 사용하지 못한 가구가 적지 않다. 현재 에너지 빈곤층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 통계조차 없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에너지 복지와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의와 지원 방법에 관해 사회적 논의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논의되고 있어 사각지대가 많이 생기고 안전망이 촘촘히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에너지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과 그에 따르는 복지 강화에 관해 숨어 있는 과제,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의제들이 아주 많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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