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가격을 통제하는 까닭에 공공요금을 일종의 조세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금을 거둬 도로와 공원을 짓고 학교와 군대를 운영하는 것처럼, 전기·가스·수돗물 등도 ‘공공재’이고 그 공공재를 공급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민에게 ‘전기세’와 ‘가스세’ 등을 거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전기·가스·수돗물 등은 공공재가 아니다. 경제학에서 공공재의 정의는 ‘비경합성(non-rivalry)’과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을 지닌 재화나 서비스다. 비경합성이란, 누군가 소비한다고 다른 사람들의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배제성은 대가를 내지 않은 사람도 소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국방·치안 서비스, 공교육, 거리의 가로등 등은 공공재의 정의에 부합하지만, 전기·가스·수돗물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적국이 쳐들어왔을 때 이에 맞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서비스(국방)의 경우,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배제할 수 없다. ‘내’가 국방으로 얻는 편익이 동료 시민의 편익을 줄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전기·가스·수돗물 등은 그 원료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유럽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이 늘어 국제 시세가 폭등하자 이번 겨울 난방용 도시가스 원가 또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공공요금이 매겨지는 재화들 중 상당수는 제한된 자원량을 두고 여러 소비 주체가 경쟁을 벌인다(경합성). 사용한 만큼 요금을 내고 돈을 내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배제성).
다만 공공요금이 매겨지는 재화·서비스는 대부분 ‘필수재’이긴 하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가스·물이 끊기면 생존이 위협받는다. 지하철·버스·택시를 이용하지 않고서 사회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고, 쓰레기와 오물을 제때 치울 수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영역들은 사기업이 초과이윤을 남기는 ‘상품’이 아닌, 공기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공급하는 ‘공공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필수재라고 모두 공기업이 생산·공급하지는 않는다. 공공성을 지닌 물건이라고 무조건 공공요금의 대상, 즉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재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석유도 전기·가스 못지않게 필수적인 에너지원이지만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나서 ‘공공요금’을 내지는 않는다. 지금은 당연한 일 같지만 1997년 유가 자유화 이전까지는 아니었다. 석유도 전기나 가스처럼 정부에서 가격을 정하고 공공요금 중 하나로 관리되었다. 에너지 시장이 대폭 민영화된 해외 국가들에서는 전기나 가스도 (우리가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소비자가 공급 기업을 선택하고 각기 다른 요금 체계 안에서 비용을 지불한다. 따라서 ‘공공요금을 지불하는 상품=공공재(혹은 필수재)’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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