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정재원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과·사진)를 인터뷰했다. ⓒ시사IN 조남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의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각에선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미국 일극 체제)’가 러시아·중국 등 여러 나라가 ‘지구 운영’에 참여하는 ‘다극 체제’로 바뀌어나갈 것으로 본다. 당분간 ‘미국 주도’ ‘러시아 주도’ ‘중국 주도’의 다른 질서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글로벌 통치권을 다투게 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신냉전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동구권 전문 연구자인 정재원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과)는 “신냉전의 시작이 아니라 19세기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팽창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라고 우려한다.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떨어지며 국가주권을 상실했던 그 야만의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으며 국경을 넘던 지난해 2월24일,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무리한 침공”이라고 평가한다.

‘놀라울 정도로 무리한 침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단일국가나 연합군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경우는 종종 벌어졌던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가 있다. 다른 나라의 국가주권을 존중하고 그 영토를 침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처럼 외국에 쳐들어가 점령한 지역을 자국 영토로 합병하는 행위는 따질 필요도 없다. 이런 유형의 전쟁은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소련은 물론 그 후신인 러시아도 동의했던 원칙이다. 러시아는 침공 직전까지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는 없을 것’이며 ‘전쟁 운운은 서방의 히스테리’라고까지 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초국가적 노력의 하나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이런 나라가 침공·합병에 나섰으니 ‘무리하다’고 표현할밖에. 러시아는 2008년에도 조지아를 침공했지만 며칠 머물다가 철군했을 뿐 자국 영토로 합병하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2014년에 이미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크름)반도를 전쟁 없이 합병한 바 있다.

크림반도에 더해 이번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루한스크·도네츠크), (돈바스와 남쪽의 크림반도를 잇는) 자포리자와 헤르손,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을 새로 점령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20%에 해당한다. 푸틴 대통령이 신점령지들을 러시아 영토로 합병한다는 법률에 서명까지 마쳤다.

‘러시아로서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나토가 러시아 국경 바로 앞까지 확장되어(나토의 동진) 푸틴을 자극하지 않았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항의하려면 나토 회원국을 공격해야지 왜 애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나. 왜 민간인을 죽이고 납치하고 고문하며 쫓아냈나. 이미 우크라이나에선 7만여 명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4300만 인구 중) 1600만여 명이 국내 다른 지역이나 해외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이번 침공을 ‘러시아의 방어 전쟁’이라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는 여러 민족이 산다. 우크라이나인 외에도 러시아인·벨라루스인·유대인, 심지어 고려인까지. 러시아인도 우크라이나에선 소수민족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합병에 최소한의 정당성은 있지 않나. 합병 지역들에서는 주로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다가 찬반 투표까지 거쳐 러시아로 편입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민족자결주의? 정작 러시아는 자국 영토 내에서 소수민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잔혹하게 짓밟아왔다. 민족자결주의가 옳다고 치더라도 우크라이나 내의 독립 움직임(사실상 러시아로 합병)을 정당하다고 보긴 힘들다. 현지 거주민이 아닌 러시아의 연방보안국, 특수부대 군인, 사보타지 전문가, ‘러시아 나치’ 등이 해당 지역으로 들어가 분리를 선동하고 반대 세력을 축출하며 여론조사나 투표를 조작했다. 지금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돈바스에서 러시아계 비율은 30~40%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27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러시아 합병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AP Photo

러시아 측은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탄압하는 돈바스 내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러시아계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까지 감행되었다고 한다.

2014년의 돈바스 전쟁(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친러 세력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충돌하며 발발한 전쟁. 러시아 군이 친러 세력 지원) 이후 8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줄곧 국지전이 벌어졌다. 유엔 공식 기록에 따르면, 사상자가 4000여 명 발생했다. 러시아는 이 모두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행한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엔의 어떤 보고서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제노사이드’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측이 상대방을 포격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군인·민병대·민간인 숫자를 모두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이 주장한 침공 명분 중의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치라는 이야기인데.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과장이다. 21세기 들어 유럽 전역에서 나치류의 강경 민족주의 성향이 만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그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이런 흐름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 시작되었고 그 정도가 역시 가장 낮은 편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선 네오 나치로 불리는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이 성공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다. 우크라이나의 극우정당들은 크림과 돈바스 일부를 빼앗겨 반러 국수주의 감정이 분출하는 상황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지역이다. 일부 현상을 과장해서 ‘우크라이나 측이 나치라서 침공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침략자에 대한 맹목적 동조일 뿐이다.

그렇다면 돈바스 전쟁 당시 민병대로 결성되어 지금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되어 있는 ‘아조프(아조우) 연대’는 어떤가? 아조프 연대는 창설 당시 나치로 자처했다. 러시아 측은 당시 이들의 외신 인터뷰나 영상 자료 등을 ‘우크라이나 나치화’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아조프 연대는 돈바스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에 고향을 빼앗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결성한 민병대다. 초창기엔 소속원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거나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2014년 말,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되어 확대·개편되면서 아조프 연대 내부에서 일어난 사상투쟁을 거치며 극단주의자들이 쫓겨났다.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정규군에 나치를 두면 곤란해지지 않겠나. 그러나 러시아로서는 아조프 연대의 존재가 ‘우크라이나의 나치화’를 우길 수 있는 좋은 트집거리가 된다. 그래서 초창기 아조프 연대 관련 자료들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치’라 불리는 세력의 특징을 기준으로 논한다면, 지금의 러시아가 훨씬 나치나 ‘국가 파시즘’ 같은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15년 형까지 선고받고 투옥되고 있다. 이것이 나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러시아의 ‘나치화’가 심각하다. 러시아의 신나치주의자(네오 나치)들은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합병하는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Twitter 갈무리

실제로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라거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영성적 통일체(spiritual unity)’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쟁을 러시아의 ‘옛 영토 수복 운동(irredentism)’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나치의 냄새가 물씬 풍기긴 한다.

설령 같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다른 주권국가로 쳐들어가서 합병하는 일 따윈 용납될 수 없다. 하물며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과 엄연히 다른 민족이고 우크라이나 역시 독자적인 주권국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국이 러시아와 완전히 다른 발전 경로를 밟아온 별도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러시아가 240여 년에 걸친 몽골의 (간접)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전제주의적 측면이 강화된 반면, 우크라이나는 자유를 중시하는 카자크의 민주적·연방주의적 전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실제로 두 나라는 언어와 사고방식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많이 다르다.

‘푸틴의 두뇌’라 불리는 신비주의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은 노골적으로 나치즘과의 친화성을 과시해왔다. 그는 민주주의나 인권·자유 같은 근대적 보편 가치들을 서구(the West)에서 비롯된 퇴폐적 악(惡)이며 인간의 ‘영성(spirit)’을 거스르는 것으로 본다. 반서방·반자유주의 기치 아래 유럽과 아시아를 러시아 중심으로 통합하는 이른바 ‘유라시아주의’를 제창하기도 했다. 푸틴의 언어와 비슷하다.

그게 바로 나치즘이고, 두긴은 나치다. 두긴은 실제로 나치를 찬양해왔고, 유럽에서 열리는 네오 나치들의 세미나에 여러 차례 참석하며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의 가명은 ‘지페르스’인데, 2차 대전 직후 나치 전범으로 처형당한 ‘볼프강 지페르스’에서 따온 이름이다(편집자 주:지페르스는, 초자연주의와 인종학을 연구한다며 유대인 인체실험을 주도한 나치의 사이비 과학단체 아넨에르베를 주도했다). 일각에서는 두긴의 유라시아주의를 ‘서구(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나 대안 혹은 ‘과거의 영미 제국주의나 현대의 미국 패권에 맞선 또 다른 사상적 영감을 준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식 제국주의’ 혹은 ‘러시아 파시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들은 ‘러시아만이 순결하고 유럽은 타락했으며’ ‘동성애자들은 말살해야 하고’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게이들이 러시아를 성폭행해서 생긴 사생아’ 같은 표현을 예사로 사용한다. 두긴뿐 아니라 이즈보르스크 클럽 등 러시아 정권 주변의 사람들(이데올로기 그룹)이 굉장히 많이 하는 이야기다.

러시아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침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해도 될까? 적어도 ‘우크라이나 나치로부터 돈바스의 러시아 거주민을 지키기 위해’ 침공한 것은 아닌 듯하다.

러시아가 정말 돈바스의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면, 그 지역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헤르손과 자포리자까지 진군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2014년 돈바스 전쟁 당시 오데사(흑해와 연접한 우크라이나 서남부의 항구도시) 등에서도 분리 및 러시아 합병으로 가는 시도가 이루어졌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긴 하겠지만 정말 러시아에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땅의 가치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6배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에 수많은 광물이 묻혀 있다. 도네츠크·루한스크처럼 상당한 수준의 공업화를 이룬 지역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남부는 흑해와 맞닿아 있어 지정학적 전략성도 엄청나다(편집자 주:흑해를 둘러싸고 북쪽엔 우크라이나, 동쪽엔 러시아와 조지아, 남쪽엔 튀르키예, 서쪽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자리 잡고 있다. 흑해는 지중해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은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라고 주장한다. ⓒREUTERS

당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목표는 무엇이었다고 보나.

최대 목표는 전역을 장악한 뒤 괴뢰정권을 세우거나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었을 터이다.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돈바스를 이미 합병한 크림반도와 육로로 잇는 지역들(헤르손·자포리자)은 확보하려 할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이다. 이 지역들을 합병하면 러시아 서남부와 연결해서 새로운 산업지대를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크림반도로 담수를 끌어들이려면, 드네프르(드니프로)강 하류 지역의 헤르손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장악하면 흑해로 나가는 지정학적 이익을 누릴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내륙 국가로 전락시킬 수 있다. 대외적으로 동유럽과 튀르키예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내륙 국가가 된 우크라이나 역시 점차적으로 편입 혹은 약화시킬 것이다.

이번 전쟁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해체 징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삼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보다 항상 우월하다고 볼 수 있을까?

1945년 이후 국제질서(그것을 미국 패권주의로 부르든 서구 패권주의로 부르든)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나도 그런 견해이고 단 한 번도 바꾼 적 없다. 이에 대항하는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아무리 마땅치 않더라도 ‘미국의 반대편에 있었던 국가들’로부터 억지로 긍정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푸틴은 이번 전쟁에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동안의 국제질서에선 아무리 흉악한 적대국이라도 핵무기처럼 인류 전체나 문명의 기틀까지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조치로 공격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긍정적 의미의) 질서까지 위협하는 푸틴의 러시아에 대안적 국제질서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인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과정을 보면서 견지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한국 등 세계 곳곳의 지식인 중 일부가 러시아를 옹호하는 가운데 반전-반푸틴 민주화운동에 나선 우크라이나인·러시아인·벨라루스인 등을 조롱하는 광경을 보면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가 왜 그 지식인들에게 자국이 피해자란 점을 연이어 입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러시아나 중국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이라기보다는 강력한 구성원들이다. 이 나라들과 관련해서 돌출하는 사건들 역시 글로벌 패권 다툼의 일종이지 ‘새롭고 대안적인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없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그 나라들 내부에서 민주주의가 끔찍한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과거에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며 외국을 침략해본 덩치 큰 나라가 내부의 독재로 끝나지 않고 대외적 팽창, 그것도 협박 정도가 아니라 군사적 공격으로까지 치달은 광경을 전 세계가 목격한 사건이다.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이후의 국제질서 패러다임은 신냉전이라기보다 19세기적 팽창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다. 미국과 서방의 세계 지배를 비판해야 하지만 그 반대 진영에서 시도되는 무력 침략과 영토 변경 등에 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든 우리의 원칙은 굳건해야 한다. ‘무력을 통한 주권 침해 행위 반대!’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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