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온 일본 출장에서 함께 취재를 다닌 통역가 H는 2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도쿄 시내와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전철을 타고 이동하던 길, 그동안 통역을 맡았던 취재와 방송 프로그램, 다양한 분야의 답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더해 자기 일처럼 성심껏 취재를 거드는 태도를 일정 내내 접하면서 그가 ‘잘나가는’ 통역가였으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정돼 있던 취재를 모두 마치고 작은 뒤풀이를 겸해 우동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맥주 한잔을 곁들이던 도중 H는 “이번에 〈시사IN〉에서 연락을 받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라고 말을 꺼냈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온라인 회의 같은 일은 간혹 있었으나 일본 현지를 다니며 통역을 하는 건 2년 반 만이라고 했다. 나라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예전보다 일이 줄었겠구나 예상이야 했지만 일감이 뚝 끊길 정도로 혹독한 시간이었다는 건 그 얘기를 듣고야 알았다.
2년이 넘는 기간, 우리는 같은 감염병의 영향력 아래에서 동일한 방역 지침을 따르고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사실 서로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른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뒤에 짓고 있는 표정은 제각기 달랐을 텐데 말이다. 김영화 기자가 쓴 영국 기사에서 “재난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동시에 경험했지만, 모두가 이 피해를 측정하진 않았다”라는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문 것은 이 때문이다(제788호 ‘영국이 재난 불평등에 대처하는 방식’ 기사 참조).
‘세계의 코로나 대응, 현장을 가다’ 기획으로 다른 나라의 팬데믹 경험을 둘러보고 온 이후 깊게 남은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겸허함이었다. 자연계에서 어느 날 홀연히 튀어나온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정말 어려운 상대였고, 최선을 다해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는 다르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살피고, 보듬고, 복구하는 일은 오롯이 인간의 손에 달린 일이다. 진짜 실력은 여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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