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 임신부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구급차에서 아기를 낳는 일도 발생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혹은 밀접접촉자들 가운데 ‘임신부’도 있다. 임신 기간에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하고, 이상 신호가 있으면 응급으로 병원을 찾던 사람들이다. 평상시에도 스스로와 태아의 건강에 주의를 기울인다. 아기를 낳을 때는 병원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분만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진자 혹은 밀접접촉자가 되는 순간 기존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재택치료처럼 코로나19 확진자를 관리하는 별도의 트랙을 운영해왔다. 임신부도 마찬가지다. 확진된 임신부는 현재 코로나19 전담병원,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산부인과 병동에서만 분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확진자 10만명에 이르는 현재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의료 체계가 아니다. 최근 한 달 새 확진자가 20배 넘게 늘어나면서 이러한 접근방식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 틈새에서 산모와 신생아들이 위협받고 있다.

2월 중순, 수도권 지역의 임신부 김아영씨(가명)에게 출산 진통이 찾아왔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신속항원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산부인과 측은 이곳에서 분만이 어렵다고 했다. 중수본을 통해 코로나19 전담 산부인과를 배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수본 쪽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진통 간격은 점점 더 짧아졌다. 그사이 산부인과에서 백방으로 알아봐 준 덕에 인근 상급병원에서 그를 받아주기로 했다. 겨우 그날 오후 늦게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임신출산 커뮤니티 등에는 김씨처럼 분만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코로나19 확진·밀접접촉 임신부들의 사연이 넘친다.

이런 혼란은 출산예정일이 임박한 이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오민정씨(가명)는 임신 19주 차에 접어들던 2월6일 코로나19에 확진됐다. 다음 날 관할 보건소에서 문자로 보내준 링크에 접속해 기초역학조사서’를 작성했다. 재택치료 희망을 선택하고, 임신 19주 차라는 내용도 기입했다. 미열이 있고 기침이 심한 데다 기침을 할 때마다 배에 힘이 들어가서 신경이 쓰였다. 2월8일 오후, 오씨가 배정된 재택치료 관리 병원(A)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A 병원에는 산부인과가 없을뿐더러 오씨가 임신부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A 병원 측은 임신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다시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얼마 뒤 전화가 온 곳은 병원이 아니라 보건소였다. 오씨가 임신부라서 A 병원이 재택치료를 반려했다는 것이다. 보건소는 재택치료가 반려됐기 때문에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언제 병상이 배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오씨는 직접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확진 5일째에 재택치료 관리 병원을 새로 배정받았다. 하루에 한 번 형식적인 모니터링 전화가 왔다. “전화 거는 분이 달라지는데 매번 제가 임신부인 걸 모르시더라고요. ‘열 안 나시죠? 아침·저녁 체온 체크해주세요’ 묻는 수준이었어요.”

일산병원 김의혁 산부인과 교수. ⓒ시사IN 윤무영

동네 산부인과도 참여해야 한다

재택치료 병원이나 보건소 담당 직원들을 확대해 모든 확진자를 세심하게 케어할 수 있는 재택치료 시스템을 갖추면 될까?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그런 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정부가 확진자 한 명 한 명을 모두 평가해서 의료기관과 연결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확진자가 10만명, 20만명씩 나오는 오미크론 시대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임신부가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진료가 필요할 때 마스크를 쓰고 동선을 분리해서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당연한 진료 방식이다. 한국에서 바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면, 동네 산부인과에서 비대면 진료라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민정씨가 격리 기간 도움을 얻었던 곳도 보건소나 재택치료 관리 병원이 아니라 본래 다니던 산부인과였다. 배정이 꼬이자 오씨는 급한 대로 다니던 산부인과에 연락했고 필요한 약을 원격으로 처방받아 남편을 통해 전달받았다. “산부인과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하셨지만 임신부를 배려해 충분히 상담하고 진료해주셨어요.”

격리 기간이 끝난 이후 오씨는 바로 산부인과를 찾아 태아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아기와 본인 모두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오씨처럼 격리가 해제된 이후 산부인과를 방문할 수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대다수의 산부인과에서 코로나19에 걸렸던 임신부에게 ‘격리해제서’가 아닌 ‘음성확인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감염력은 증상 발현 이후 7일, 길어도 10일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PCR 검사에서는 길게는 두 달까지 양성이 나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확진 이후 완치된 임신부들도 진료나 분만을 받아주는 산부인과를 찾아 수십 번 전화를 돌리고 있다.

2월14일 광주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된 외국인 산모가 구급차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받아주는 병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을 구하지 못해 확진 임산부가 구급차를 타고 떠돌다 아이를 낳았던 사건이 재현된 것이다. 당시 코로나19 병상이 고갈된 탓도 있지만, 코로나19 임신부의 분만을 받는 병원 자체가 매우 제한적인 것도 원인이었다. 소수의 병원에서만 분만을 받는 이유는 코로나 확진 임신부의 출산이 의학적으로 더 위험해서가 아니다. 감염관리를 위해 갖춰야 할 조치들이 일을 2~3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코로나19 임신부 분만을 하는 드문 곳 가운데 하나다. 이곳 김의혁 산부인과 교수는 80명 가까운 확진 임신부의 출산을 도왔다. 김 교수는 “특히 큰 병원일수록 자체적인 감염관리 가이드라인이 엄격하다. 코로나19 임신부의 경우 수술방에 들어갈 때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수술방으로 이동하는 환자의 동선도 구분하도록 되어 있다. 아기는 출생 직후 신생아실의 별도 공간에 격리된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마취과, 소아과, 신생아실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 병원들 입장에서도 코로나19 임신부를 받겠다는 결정을 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당분간 코로나19에 걸린 상태로 분만을 해야 하거나, 출산하기 전 코로나19 검사를 했다가 양성으로 판정되는 임신부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 출산’을 해야 하는 이들도 늘지 않을까(그마저 구급차 수라도 충분하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몇 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제언했다. “그동안 쌓인 코로나19 데이터와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에 기반해서 병원의 감염관리 가이드라인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완화된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더 많은 병원이 코로나19 임신부를 봐야 한다. 동네 산부인과도 참여해야 한다. 모든 출산은 응급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제한적인 의료기관에서만 확진 임신부를 받는다면, 산모들은 계속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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