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영업제한을 당했던 호프집 마노비어 사장 한문태씨가 매장에 앉아 있다. ⓒ시사IN 신선영

호프집 ‘마노비어’를 운영하는 한문태씨(63)는 1976년 서울에 왔다. 권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체구는 작지만 몸이 날쌔고 주먹이 야무졌던 소년은 “홍수환이 챔피언 되는 것을 보고” 고향인 충북 증평을 떠났다. 꿈을 찾아온 도시에서 그가 안착한 곳은 권투 도장이 아니라 음식점이었다. 먹고 잘 곳이 필요해 중국집에 취직했고, 요리를 배웠고, 그대로 평생의 업이 됐다.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차렸던 중국음식점 ‘남화루’를 시작으로 여의도, 마포, 서대문 등지로 가게를 옮기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집 10곳을 운영했다. 장사란 노력이나 실력과 무관하게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는 걸 몸소 터득했다. 2003년부터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에서 10년간 운영했던 ‘미래향’은 재개발 지구에 포함돼 철거 절차를 밟았다. ‘돈의문 상가세입자 대책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맡으며 싸웠지만 결국 제시된 보상금만 받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차렸던 ‘공리’는 4개월 만에 영업을 접어야 했다. 건강검진센터를 유치하려 했던 건물주는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호프집 ‘마노비어’를 개업한 건 2016년 11월이다. “중국집은 나이가 들면 직업병이 생겨요. 힘이 많이 들어가서 손목, 팔꿈치, 팔이 다 고장나요. 이러다가는 큰 병이 나겠다 싶었어요. 호프집은 안주 위주라 요리가 간단하니까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노후에도 장사를 계속해야 하니까 호프집을 차렸어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두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한 상가 건물의 2층을 계약해 호프집으로 단장했다. 약 300㎡(90평) 규모에 200석 테이블이 놓였다. 시설비로 3억7000만원이 들어갔다. 1차 회식을 마치고 2차를 오는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100명 넘는 단체 예약 손님을 받을 때도 종종 있었다.

한 사장은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 모임인 ‘더불어 포럼’이 이곳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기억했다. “170명인가 예약했는데 다 앉지도 못했어요. 오픈하기 전부터 안주를 120개씩, 130개씩 준비하고 테이블당 3개씩 세팅을 해놔요. 그런 때는 재미있었죠. 기억에 남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 때’가 다시 찾아올까. 아니,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숱한 고비를 넘어온 30년 경력의 자영업자에게도 1년 7개월째 지속되는 이번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코로나가 전쟁보다도 무섭구나. 전염병이 이렇게 무서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변이도 계속 나온다고 하고 코로나가 종식된다는 보장도 없고. 예측이 안 되잖아요. 말년에 운이 좋아야 하는데 이거는···.”

원래 호프집 풍경은 저녁 8~9시를 기점으로 180도 달라진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맥주잔을 기울이러 온 손님들로 썰렁했던 매장은 순식간에 북적인다. 하루 매출의 대부분이 이 시간대에 발생한다. 마노비어의 경우 성수기인 여름철과 연말에는 가게를 찾았다가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가는 손님들도 심심치 않게 생기곤 했다. 모두 다 옛날이야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했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한씨처럼 ‘사회적 모임’이 일어나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영업자들이 그렇다. 지난해 11월24일부터 8개월째 수도권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밤 10시 영업제한 조치로 특히 호프집과 같은 업종의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어떻게 보면 저희 같은 가게에는 영업제한이 영업금지나 다름없어요.”

지난해 12월24일에는 손님을 한 팀도 받지 못했다. 이날 포스에 찍힌 매출은 0원. “장사한 역사상 손님이 한 명도 안 온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말이다. 그날 한씨는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텅 빈 가게를 지키다 당시 영업제한 시간이던 밤 9시에 문을 닫았다. 지난해 12월 총매출은 350만원. 2019년 12월과 비교하면 6% 수준이다. 12월이 유독 심각했지만 다른 달이라고 낫지도 않았다. 6월 한 달을 제외하고 2020년 매출은 2019년 매출을 내내 밑돌았다. 상황이 나름 괜찮은 달이 80% 수준이었고 3월, 4월, 8월, 9월에는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매출도, 손님도, 영업시간도 줄어들고 상식과 일상이 뒤바뀌던 시기, 한 가지는 변함이 없었다. 매달 내야 하는 임차료였다. 월세 800만원에 관리비와 공과금을 더하면 한 달에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1000만원 가까이 됐다. 직원들을 내보내고 16년간 부은 종신보험을 해약했다. 4000만원을 납입했는데 돌려받은 액수는 2200만원 남짓이었다. 이 돈으로 두 달치 월세를 냈다. 가진 돈은 떨어져가는데 코로나19 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월세를 내지 못했다. 7월까지 밀린 임차료가 총 7200만원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들에게 지난해 9월부터 총 네 차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각각 1차 소상공인 새희망자금(최고액 200만원), 2차 소상공인 버팀목자금(최고액 200만원), 3차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플러스(최고액 500만원), 4차 희망복지자금(최고액 2000만원)이다. 한씨는 정부로부터 200만원씩 두 번, 서울시에서 1회 60만원을 받아서 지금까지 총 460만원을 지원받은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당시 4차 지원금은 집행되기 전이었다.) 사실 액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고 했다. 손실 규모를 메우기에 너무 미약한 금액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잘 각인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지난해 1차 지원금을 받지 못한 건 분명히 기억한다. 연매출 4억원 이하 기준에 걸렸다. 그는 그 일을 생각하면 참으려고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연매출 기준을 2019년으로 잡더라고요. 2019년은 코로나19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게다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규모가 좀 있는 가게들이에요. 피해 규모와는 아무 상관없이 ‘소상공인’이라는 기준으로만 자르면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겠지만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거죠.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고 저도 인정해요. 그래도 피해가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심하잖아요.”

7월19일 저녁, 2차로 맥주를 마시러 온 손님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얼마 전 5년간의 상가 임대차 계약이 끝났다. 6월까지만 해도 계약을 연장해 장사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7월부터는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된다기에 벼룩시장에 구인 광고도 냈다. 현실은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7월19일 저녁 8시 기자가 마노비어를 찾았을 때 매장에는 손님 네 팀이 앉아 있었다. 7월12일부터 수도권에서 시행된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최대 2인씩, 모두 8명이었다. 저녁 9시 마지막 한 팀이 가게를 찾아 이날 손님 수는 10명을 채웠다. 이대로라면 문을 열수록 적자다. 장사를 마무리하는 게 맞는 걸까. 한 사장은 “매일이 갈등”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전, 이 가게 자리의 권리금 시세는 3억원대였다. 이제는 3000만원만 달라고 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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