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 지 십 년〉
천쉐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펴냄

각자 온전한 삶을 살면서도 서로가 필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은 얼핏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건 어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온전한 삶’을 끝없이 확장시킬 수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면 가능하다. 100점이 만점인 관계에서 내가 99점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나머지 1점을 바라는 게 아니라, 만점이 없는 관계에서 나의 100점과 상대의 100점을 함께 더해 쌓아가는 것이다.

타이완 작가 천쉐는 그 과정을 이렇게 적는다. “잔잔한 지금의 사랑은 지옥을 몇 번이나 드나들며 얻은 것이다. 우리가 ‘옳은 사람’을 만나서가 아니라 드디어 ‘옳은 사랑의 방식’을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애와 별개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 옳은 방식이란 무엇일까. 먼저 자신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19년 5월24일 천쉐는 자신의 연인 짜오찬런과 혼인신고를 했다. 타이완에서 동성 부부의 결혼이 허용된 역사적인 첫날이었다. 부부가 된 천쉐와 짜오찬런은 함께 산 지 십 년이 되던 해 그동안 써왔던 일상 기록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 책의 마지막 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소설가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서서히 얻은 결실.’ 창작이든 연애든 같은 맥락이다. 긴 외길이다. 어느 단계에 있든 필연적으로 그 길을 지나쳐야 한다. 그러나 성실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지나간다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온전하면서도 서로 필요한 관계’가 연애나 결혼 생활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쉐와 짜오찬런 부부는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모든 타인과 맺는 관계의 바람직한 원형을 보여준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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