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2일, 김대중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김용준 헌법재판소장 등 11명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김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이가 조승형 재판관이다.ⓒ연합뉴스

‘다수 의견에 반대한다.’ 이 한 문장짜리 결론을 위해 200자 원고지 35장 분량을 썼다. 늘 그렇듯 연구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썼다. 1997년 7월16일자 헌법재판소(헌재)의 ‘97헌마26 소수의견’이 2021년 다시 조명받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마 때문이다.

1995년 9월 김도언 전 검찰총장은 퇴임 나흘 만에 민자당 부산 금정을 지구당 위원장에 내정되었다. 이듬해 총선에서 당선했다. 여야 합의로 검찰청법이 개정되었다. ‘검찰총장은 퇴직일부터 2년 이내에는 공직에 임명되거나, 정당의 발기인이 되거나 당원이 될 수 없다.’ 1997년 1월 김기수 당시 검찰총장 등이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냈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위헌결정을 내렸다. 단 한 명이 소수의견을 냈다. ‘검찰총장은 각별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검찰총장들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행위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로 국민 일반에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무소신 사례’ ‘직무유기형 사례’ ‘정치적 중립훼손 사례’ 등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소수의견을 낸 이가 조승형 재판관(87)이다. 그 자신이 검사 출신이다. 검사를 그만둔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평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을 거쳐 제2기 헌재 재판관(1994~1999)으로 활동했다. 재임 중 개별·반대 의견을 합쳐 무려 261건의 소수의견을 냈다.

조 전 재판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통화에서 “그 법안은 김대중 총재 아이디어였습니다.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였죠”라고 말했다. 자신이 쓴 소수의견을 다시 본 뒤 그는 “위헌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인터뷰를 고사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한 후에 자기 소신을 버리고 현직 검찰총장(김태정)을 법무부 장관으로 승진 발령한 바가 있어요. 김대중 인사 철학을 버렸다고 내가 비판했어요. 부끄럽습니다.” 법안의 아이디어를 낸 김 전 대통령이 집권 뒤 원칙을 저버리자, ‘미스터 소수의견’은 그때도 올곧은 소리를 낸 것이다. 인터뷰는 거절당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어떤 인사와는 달리, 퇴임 뒤에도 공직의 무게와 자신이 쓴 소수의견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어른’을 본 것 같았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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