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때마다 숫자가 달랐다. ‘어떻게 그게 헷갈릴 수 있을까?’ 하금철(34) 인터넷 독립언론 〈비마이너〉 편집장이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할 때 느낀 당혹감이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1982년 전두환 정권까지 ‘부랑 아동’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된 시설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어촌마을 선감도에 마구잡이로 끌려온 아이들이 학대받다 수백명이 암매장되었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자료를 읽다 각주에서 ‘선감학원’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뒤졌는데 관련 논문 하나 없었다. 그래서 옛 신문부터 향토연구가 증언까지 수집할 수 있는 자료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2016년 경기도의회에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꾸려지자 그도 참여했다. 지난해 발간된 특별위원회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1964년 선감학원생 470여 명 중 300명이 넘는 아이에게 보호자가 있었다. 1957년부터 1978년까지 적어도 1만명이 선감학원에 수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수용자들은 강제 노역, 폭력, 배고픔에 시달렸다.
이제는 중년이 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되짚는 이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입소 시기나 생활 기간 등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인터뷰를 이어가다 이유를 깨달았다. 미래를 계획하거나 기약할 기회를 빼앗긴 어린아이들은 시간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실제로 선감학원에는 달력과 시계가 없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기상 명령과 취침 점호로 인지했다. 그곳에서의 삶은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은 노역의 연속이었다.
하 편집장은 그렇게 발로 뛰어서 모은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동료 기자들과 함께 ‘소년, 섬에 갇히다-선감학원 피해자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했다. 지난해 9월에 보도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기사 16편을 쏟아냈다. 지난 1월 〈비마이너〉는 이 보도로 ‘제8회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도 받았다. 언론학자 200여 명이 심사한 결과다.
하 편집장은 “수상 자체보다는 더 많은 이들에게 연속 보도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웠다”라고 말했다. 현재 500여 명 후원자로 운영되는 〈비마이너〉를 이끌고 있는 하 편집장은 “선감학원은 한국 현대사의 폭력성이 함축된 곳이었다. 아직도 보도할 내용이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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