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에 은폐 의혹까지…군기 빠진 해병대?

  • 임지영
  • 2010.08.04

해병대가 부대 내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월4일 군인권센터 등 3개 시민단체가 미래여성센터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운전병 이아무개(22) 상병의 친척 안아무개씨는 “지난 7월4일 발생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군관계자들과 가해자인 오아무개 대령의 부인이 조카의 이종사촌인 내 아들에게까지 수 십 차례 전화해 합의를 종용하고 의혹을 무마하려고 했다”라며 군의 축소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해병대 2사단의 운전병인 이 상병은 지난 7월13일 상관인 오아무개 대령으로부터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상병의 어머니 등에 따르면, 7월10일 새벽 이 상병은 부대 근처에서 술을 마신 오 대령을 관용차에 태우고 사단에 돌아가던 길에 오 대령한테 강제 추행을 당했다. 오 대령은 차를 세우게 한 다음 이 상병에게 키스를 하고, 바지를 벗긴 뒤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은 “거부했지만 명령이라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라고 진성서에 담았다. 가해자인 오 대령은 이후에도 이상병을 불러 “난 널 좋아했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 나온 이 상병 가족에 따르면 이 상병은 충격에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 10일 밤 전화로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군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군은 부인했다. 가족들은 가해자 오 대령은 이후 이 상병을 불러 욕설을 하며 ‘죽고 싶느냐’라며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7월12일 이 상병은 국군수도병원에 보내졌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이 상병을 만난 가족들은 함께 부대로 복귀해 부사단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상병의 친척 안아무개씨는 “가족들과의 자리에서 부사단장은 오 대령을 ‘아끼는 후배’라고 표현하며 원만한 합의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군 관계자와 가해자 아내 등이 8월2일까지 매일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 합의를 요구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가족들은 “직책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군 관계자가 전화해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치료를 받는 중에도 이 상병이 특정 시일까지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문자가 휴대폰으로 고지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문자를 공개했다. 복귀 불응 시 탈영처리 된다는 전화를 추가로 받았다는 사실도 밝혔다.  

현재 민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상병을 두 차례 면담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급성스트레스에 의한 수면장애에, 가끔 자기가 졸업한 학교 기억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이은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남성 성폭력은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리란 상상이 전무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어서 초기 증상이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 상병은 오 대령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임태훈 소장은 전했다. 

7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관들이 해당 부대를 방문 조사했다. 조사 결과 오 대령의 성폭력 정황이 포착됐고 인권위 정식 수사의뢰 및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 등을 요청했다. 오 대령은 일부 사실을 시인했지만 술에 취해 있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8월5일 해병대 사령부에서 피해자, 군검찰관, 가족, 변호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사가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