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동에 넘치는 이국의 맛과 멋
- 안산·변진경 기자
- 2009.02.03
경기 안산시 ‘국경 없는 거리’에는 가난과 차별, 불법 체류자 단속과 노동상담소, 설날 노래자랑만 있는 게 아니다. 50여 나라에서 넘어와 우리에게 선사하는 여러 빛깔의 문화도 즐길 수 있다.
가장 다양하고 이색적인 선물은 역시 음식이다. 원곡동 정육점에는 양갈비가 주렁주렁 내걸려 있다. ‘엄지양꼬치’(지도 ⑩)에서는 양 심줄·쇠심줄·쇠떡심부터 메추리·돼지싹뼈·건두부 같은 ‘신기한’ 재료들까지 꼬치에 끼워 굽는다. 좀더 용감한 식도락가에게는 ‘가마솥 통닭구이’(지도 ③)란 간판을 내건 작은 분식점을 추천한다. 중국 동포인 주인은 이곳에서 통닭구이 외에도 한 접시 가득 2000원에 ‘뚱저’라는 술안주를 판다. 돼지 껍질을 물에 삶아 묵처럼 굳혀 먹는 음식이다. 한입 베어 물면, 주인 부부는 한국인이 청국장 떠먹는 외국인 바라보듯 즐거운 표정으로 손님의 반응을 기다린다.
50여 나라 패션 유행도 ‘감상’할 만
익숙한 음식을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베트남 쌀국수집(Tre Xanh, 지도 ⑤)도 괜찮다.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파는 쌀국수보다 값도 싸고 국물도 진하다. 한쪽 구석에 진열된 베트남 식료품과 담배·화장품·영화 DVD·가요 음반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외식보다 직접 요리해 먹기를 즐기는 원곡동 외국인들은 ‘월드푸드마트’(지도 ⑧) 같은 식료품 상점에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한다. 중국식 절인 배추와 월병은 물론, ‘말라’ ‘사’ ‘다까이’로 불리는 동남아시아 채소·향신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원곡동은 세계 50여 개국의 패션 유행을 감지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 청바지보다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인 레아(LEA) 청바지를 더 좋아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청바지를 사와 원곡동에서 판매하는 ‘LEA 인도네시아’(지도 ⑦) 조용희 사장(56)에 따르면, 한 벌에 5만~6만원 하는 이 청바지는 인도네시아에서 ‘리바이스’ 못지않은 위상을 자랑한다. “허리와 허벅지가 얇고 엉덩이가 튀어나온 인도네시아인 체형에 딱 맞게 디자인한 이 청바지를 못 잊어 한국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 청바지만 찾는다.”
베트남인 섀기커트, 파키스탄인 구레나룻
외국 문화를 차분히 공부할 수 있는 곳도 생겼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지도 ①)은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해 마련한 문화 공간이다. 인도네시아·베트남·중국·타이·필리핀 등 안산에 많이 거주하는 외국인의 고국에서 인기 있는 서적 4700여 권을 구비해놓았다.
원곡동이 마냥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다. 거리에는 경찰서에서 내건 ‘불법 흉기 소지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국경 없는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PC방은 외국인용과 한국인용이 따로 있다. 한 비디오방 종업원은 “이 동네에 비디오방과 만화방이 많지만, 주인들이 웬만하면 외국인을 받지 않으려 한다. 시끄러운 데다 한국인 손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오면 쫓아내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원곡동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 때, 길을 물을 때, 대다수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반말로 응대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이주민 사회 안에서도 힘센 나라 집단이 약한 나라 집단을 상대로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