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

  • 시·사진 강제윤 시인
  • 2019.05.16

시와 사진

바람 부는 날에는 섬으로 갔다
바람 잔잔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먹구름이 밀물처럼 몰려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실연의 상처가 덧나 심장이 뻥 뚫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상처에 새살이 차올라 심장이 간질간질하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내가 다시 나를 용서하기로 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날에도 섬으로 갔다
기쁨이 물결처럼 너울져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도 섬으로 갔다

해 다 저문 저녁에도 섬으로 갔다
칼바람이 온몸에 칼자국을 내던 겨울 한낮에도 섬으로 갔다
한 달 동안이나 아무도 나를 불러주는 이 없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오갈 데 없는 날에도 섬으로 갔다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상현달처럼 다시 사랑이 차오르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