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수술 산부인과’를 알려달라는 독자들의 메일 [프리스타일]

  • 임지영 기자
  • 2019.04.10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지만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건 늘 긴장되는 일이다. 지난 연말에도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기사를 잘 읽었다고 시작되는 메시지에는 내가 쓴 기사의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9년 전 기사였다. 당황스러웠다.

9년 전, 닥치는 대로 산부인과를 돌아다녔다. 일부 보수적인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을 고발해 낙태 단속이 심했다. 나는 서울 시내의, 어딘지 허름해 보이는 산부인과를 골라 낙태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대부분 안 한다고 했지만 두 군데서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 군데는 꽤 높은 금액을 불렀고 다른 곳은 단속 이전의 비용을 요구했다. 낙태 단속이 바꾼 풍경을 고발하는 기사였고 10여 년 기자 생활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기억이 맞다면 100통 넘게 메일을 받았다. 100이면 99가, 낮은 가격의 산부인과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낙태가 불법이라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 독자 역시 산부인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절박한 마음에 옛 기사에서라도 지푸라기를 구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기사가 나온 뒤에도 낙태 합법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고 ‘자연유산 유도약’이 등장했다. 인식이 바뀌었을지는 모르지만 제도가 따라주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예전 기사를 다시 읽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접한 도덕 시험 문제가 떠올랐다. 배점이 높은 서술형 문제였다. ‘낙태가 허용되는 다섯 가지 경우를 서술하시오.’ 어쩌다 본 책에서 불쌍해야(강간 등으로 임신) 낙태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었던 게 기억났다. 맞힌 사람이 거의 없다며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10대의 성적에 대한 고민을 다룬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Sex Education)〉는 한 에피소드에서 낙태를 다룬다. 생명권이 먼저인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인지 하는 해묵은 프레임으로는 현실에 접근하기 불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낙태죄가 7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미래의 어느 독자라도 다급한 마음에 검색을 하다 하다 9년 전 기사에까지 가닿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