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펠트(예은), 기꺼이 음악 하는 여자
-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 2019.03.28
2014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미?(Me?)〉가 대표적이었다. 타이틀 곡 ‘에인트 노바디(Ain’t Nobody)’는 어두운 덥스텝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대중가요로서는 다소 낯선 접근방식을 가진 곡이었다. 현대무용을 접목한 퍼포먼스의 부담도 상당했다. 예은은 곡 내내 바닥을 뒹굴고 비를 맞았다. 야심도 있고 고생도 했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화장과 인형 같은 옷을 벗고 무대 위에서 날것의 ‘나’를 보여주는 여성 아이돌에게 세상이 건넨 시선은 예상대로 차가웠다. 앨범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그룹 멤버의 솔로 데뷔라는 화제성에 비해서는 아쉬운 상업적 결과를 낳았다.
호의적인 반응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다름 아닌 평단이었다. 록, 덥스텝, 트립합, EDM 등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 요소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이 새로운 세계에 적지 않은 전문가가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이듬해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노래 부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핫펠트는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상을 최종 수상했다. “핫펠트로 활동하고 처음 받는 상이고, 데뷔하고 나서 혼자 상 받는 게 처음”이라는 말로 소감을 시작한 그는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 또 오도록 하겠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꾸준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희망 어린 선전포고였다.
이후 핫펠트의 행보는 그 선전포고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개코, 베이빌론, 치타 등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던 그는 2017년 원더걸스 해산과 함께 10년간 몸담았던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며 흑인음악 레이블 아메바컬쳐와 새롭게 계약했다. JYP 시절 박진영 대표를 제외하고 소속 가수 가운데 퍼블리싱 팀과 작곡가로 계약한 첫 인물이었던 그는, 아메바에서도 해당 레이블과 계약한 첫 번째 여성 음악가가 되었다.
비로소 완벽한 혼자가 된 후 핫펠트는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더욱 가까이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레이블 이적 이후 처음 발표한 ‘새 신발(I Wander)’과 수록곡 ‘나란 책(Read Me)’은 10대 시절부터 몸담았던 첫 둥지를 떠난 허전함과 설렘을 예의 솔직함으로 그려낸 노래들이었다. ‘여섯 살 동생이 태어나던 때와/ 열두 살 분노를 처음 배운 때와/ 열다섯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그리고 열여덟 가슴 벅찼던 꿈’(‘나란 책’)을 담담하게 노래하던 그는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싱글 ‘위로가 돼요(Pluhmm)’를 통해 ‘말랑 자두 좋아해요?’라는 은근한 유혹에서 ‘소고기 사주세요’라는 유머러스하고 적극적인 구애도 서슴지 않는 참 솔직하고 참 음악 잘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기다릴 건 하나다. 내 이야기를 하는 여자, 음악 잘하는 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