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소설은 테마파크
- 김민식 (MBC PD)
- 2018.01.02
얼마 전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을 읽었어요. 현대인의 일상을 공포의 소재로 다룬 단편들이 총출동합니다. 무박 자전거 국토종주 중 만난 라이더, 함께 술을 마시면 매번 필름이 끊기는 술친구, 새벽 2시40분만 되면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기. 일상의 한 단면을 쓱 잘라 그 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환부를 드러내는 단편들, 오싹합니다. 어느 작가가 ‘공포는 도구도 에너지도 필요 없는 놀이 기구’라고 했는데요, 백번 공감합니다. 특히 공포 소설 단편집은 다양한 라이드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 테마파크지요.
공포를 기반으로 한 단편소설들이 SF, 판타지, 추리 등 장르를 오가며 각자의 매력을 뽐냅니다. 단편 ‘증명된 사실’에는 소립자 연구를 전공한 물리학자가 산 속의 수상한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연구 과제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랍니다. 영혼의 존재는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요. 중요한 건 그 많은 영혼이 사후에 다 어디로 가는지를 밝히는 일입니다. 그동안 1000억명이 지구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면, 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소설의 마지막에는 과학적 추론에 바탕을 둔 SF적 반전이 나오는데요,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다 만나는 당연한 결말에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브릿G에 게재된 2000여 편의 중·단편 소설 중 편집부에서 엄선한 10편의 화제작 앤솔러지’라는 책 소개에 끌렸어요. ‘브릿G’는 종이책으로 만나던 소설을 온라인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인 소설(소셜이 아님) 플랫폼이랍니다. 웹 소설에서 인기 장르가 단편 공포 소설이지요. 무수한 작품 중 웹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니 신뢰가 갑니다. 이런 시도, 참 좋네요. 요즘 시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휴대전화에서 텍스트를 읽습니다. 책 읽는 쾌감을 젊은 독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올해의 책’으로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