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앞에 선 낡은 비장함

  •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2017.01.06

[올해의 사진]

아들을 낳기 위해 돌부처의 코를 떼어다 갈아 마시는 풍속이 있었다. 성스러운 권력이라 하더라도 거대한 힘이 물질로 형상화하면 이렇듯 성적 상상력도 그 품에 끌어안기 마련이다. 물론 부처는 인자하다. 소박한 욕망에 제 몸을 떼어내어 적선한다 할까. 난폭한 권력이 석상이 되거나 동상이 되면 그 사정이 사뭇 다르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권력은 무협소설 속의 괴한들이 ‘흡성대법(吸星大法)’을 하듯 이런저런 거친 욕망과 음란한 상상력을 빨아들여 제 동력으로 삼는다. 이미 영험은 잃었지만 제 몫의 젯밥은 챙길 줄 아는 추억 속의 정치적 구호들이 그 의복 노릇을 하니 때로는 비장함조차 없지 않다. 벌써 낡아버린 비장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