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경근현대를 통과하며 탈락된 역사와 굴절된 욕망들을 탐구하는 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원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이들 틈에 즐겨 머문다. 어디에나 존재했으나 불식간에 사라져 잊히는 것들이 우연히라도 카메라에 담기길 바란다. 주로 오랜 관계에서 비롯된 사진을 원하지만, 정작 그리되면 찍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평범한 공간에 쌓인 시간을 묻기보다는 듣고자 한다. 김동우줄곧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무거운 장비 배낭 메고 산을 탈 때도 있고, 흥신소 직원처럼 사람을 수소문해야 하고, 공동묘지를 매일 출근하듯 다니는 일이
할아버지는 살아오는 동안 정말 다양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마저도 별 소용 없거나 이미 겪은 적 있기에 더 참담한 붕괴 또한 있을 것이다. ‘겪음’과 ‘견딤’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람은 폐허에서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가. 자연은 무심하다. 삶은 불시에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극복의 다른 말은 ‘겪어내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집은 무너졌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일어나던 힘이 있을 것이다. 그 힘은 살아온 날만큼 아주 많을 것이다. 일상과 생활의 힘. 겪음과 견딤의 힘. 그 힘으로 부디 다시 일어나주세
12월3일 자정 무렵 불안한 마음으로 SNS 피드를 새로고침하다 가짜뉴스 주의보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상황에 더욱 큰 혼란을 유도하려고 정치인의 얼굴을 훔쳐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자들도 있다는 것. 그 사실에 생각이 닿자 눈과 손이 잠시 멈췄다. 그렇지. 그들도 얼굴을 도둑맞을 수 있다. 딥페이크 소지 처벌법을 논의할 당시 ‘알면서’라는 단서를 넣었다 뺐다 했던 사람들도.‘능욕’할 작정으로 음란물을 만들 때와 사회 혼란을 유도할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제작할 때 쓰이는 기술은 같다. 얼굴을 훔친다는 건 존엄을 훔치는 일.
겨울은 진학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즈음 기사들은 청소년을 곧 수험생으로 취급한다. 크리스마스 전에 대입 수시전형 합격자가, 설 연휴 뒤에 정시전형 합격자가 가려진다. 모든 경향과 추세, 성공과 실패는 면밀히 분석되어 새 수험생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내년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는데, 요지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이다. 홍보 영상은 말한다. “학교만 다녔을 뿐인데 내 꿈을 찾았다!” 글쎄, 눈치 빠른 학생과 학부모들은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대입에 유리할지 이미 설계 중이다. 사회가 성장이 아니라 성공을 요구하며, 그 성공의 문조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정찰기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누군가의 머리 위에 죽음의 좌표를 찍고 돌아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집을 무너뜨리는 전투기의 소음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전쟁의 잔혹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남과 북이 6년 만에 접경지역에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서로가 쏘아대는 말의 파편이 오물 풍선과 무인기가 되어 서울과 평양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은 견고해 보이는 평화가 소리 없는 균열에 얼마나 허술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
휴전이 되던 날, 밤을 새워 통곡한 이들이 있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 것이다. 그리워하며 세월이 흘렀다. 처음엔 고향을 잃었고, 그다음엔 고향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차차 잃었다.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이 철새가 되어 고향 땅으로 향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당연하게 선물처럼 받는 것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버스를 타고 싶다는 말을,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말을,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말을,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수용시설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얼마나 해야, 어떻게 해야, 이 사회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켜켜이 쌓인 슬픔과 분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20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장애인들의 빛나는 자부심이다. 우리는 2001년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장애인들이 맨몸으로 막아섰던 그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왔고, 2006년
출렁. 찰랑 아니고 철렁 아니고 출렁, 다가온다. 깊디깊은 바다, 심해에서 밀려오는 너울 파도처럼. 어둡고 차가운 땅에서 용솟음쳐 올라오는 불덩이처럼, 얼굴이 온다. 이름이 온다. 뭉우리돌들이 온다.“네 놈은 심히 어리석다. 땅을 사면 주인이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정한 이치···.” 적들이 김구에게 말했다. “내 파내지는 고통이 심할지라도 끝까지 뭉우리돌이 되어 살다가 죽으리라.” 그 뭉우리돌들이 박혔던 자리가 온다.바다 넘어, 광야를 건너 살아생전 한 사람이 걸어가고 달려간 행로가 보인다. 기진하여 묻혔던 초라한 초장지 무덤이
제 기억 속 최초의 흰 가운은 ‘신작로’라고 부르던 길 위에 있습니다. ‘이발사’라는 소멸 위기의 보통명사와 함께. ‘이발관’이라는 잊히고 있는 장소와 함께. 기억 속 제 최초의 바가지머리는 외지에서 흘러온 이발사의 작품이었습니다. 한없이 사랑스럽던 바가지머리는 똑같이 재현될 수 없고, 그래서 향수가 됐습니다. ‘이발사’라는 보통명사에서 ‘우리마을이발사’ ‘우리동네이발사’라는 고유명사로 뿌리를 내리고, 50년 남짓의 세월을 살아낸 당신. 어느덧 백발인 당신이 거울 앞에서 펼쳐 보이는 가위질은, 빗질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성스럽
뉴라이트. 뉴 라이트. New Right.태생부터 새롭지 않았던 세력이 귀환했다. ‘독립’을 ‘기념’하는 것과 거리가 먼 발언을 쏟아낸 자를 독립기념관장에 앉혔다. 4개월 뒤 대통령은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야 만다.
한 선수가 온 힘을 쏟는 순간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닿는다. 인류는 좀처럼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끝없이 갱신하며 가보지 않았던 경계 너머로 향하는 종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함께 환호한 다음, 선수들의 치열함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혼자 지을 표정이 보고 싶다. 빛이 차오르는 얼굴들을 상상한다.
사랑은 세계를 바꾼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깊은 데까지 나누는 일이지만, 사랑이 두 사람만의 일로 끝나는 법은 없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서로의 삶을 바꿀 때, 그들 주위의 모든 이의 삶 또한 거기 휘말리고야 마는 것이다. 사랑이란 어떤 식으로든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때로는 뜨겁고 격렬하며, 또 때로는 은근하고 부드럽다.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의 사랑에 우리 모두 휘말리고야 말았다. 이제 남은 일은 세계가 바뀌는 일뿐이다.
사물 안에 깃들어 사물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를 영혼이라 부를 수 있다면 저 수많은 자동차들의 영혼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자동차들의 영혼은 저당 잡혀 있군요. 영혼을 저당 잡혀 공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군요.“죽지 마세요” 한마디 적어두려고 차창의 먼지를 닦았는데, 영혼 빠진 얼굴 하나가 비칩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망령들에게 영혼을 납치당한 사람.영혼을 찾을 때까지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영혼 잃은 사람들이 공터에 가득합니다.
‘국민 닮은 정치’를 말버릇처럼 읊조리는 정치인을 자주 본다. ‘여의도 버블’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다. 정작 공천이 시작되면 결국 중년의 남성 법조인이 다수인 국회를 매번 마주하게 된다.극한의 대치 끝에 2024년 9월2일에야 개원식을 한 제22대 국회의 또 다른 기념 촬영은 그래서 눈길이 간다. 노란색·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은 세월호·이태원·오송 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국회 청소 노동자, 장애인, 전세사기 피해자 등 150명이 국회 개원식에 초청받았다.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의 기념 촬영이 끝난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많은 언론은 배부른 ‘귀족 노조’가 몽니를 부린다고 비판했다. 삼성 노동자들이 왜 대거 전삼노(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는지, 사용자 측의 어떤 태도에 분노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언론은 별로 없었다. 노동자와 임원 사이 현격한 성과급 격차, 실적 압박과 그에 따른 인사고과 제도, 경영진의 신기술 분야 대응 실패 등 오랜 문제가 쌓여 있었다. 삼성전자 역사상 첫 파업을 벌인 노조는 사회적 발언도 내놓기 시작했다. 전삼노는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계엄 포고령에 파업, 태업, 집회
35.5%. 1인 가구를 나타내는 통계 수치다. 누구나 1인 가구가 될 수 있지만, 잠재적 1인 가구는 저 수치에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1인 가구의 다채로운 모습도 숫자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다양한 1인 가구가 공존하는 시대이기에 그들 모두 돌봄과 심리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 단정 지어선 안 되지만, 변화한 가구 형태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해진 정책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사회의 역할은 모든 구성원들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취약성을 감추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기꺼이 발화할 수 있어야 한다. 권리와 혜
어떤 노동은 나로부터 멀어서 보이지 않고, 어떤 노동은 나와 가까워서 더 잘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하루 속엔 수없이 많은 타인의 노동이 빼곡하게 자리해 있다.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은 타인의 노동 없이는 불가능하다.지금 내가 하는 일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나의 일은 나의 필요에 의해 수행되지만 그것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타인이다. 그것은 멀고도 가까운 타인에게 가닿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놀라운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브리핑은 언제나 황당함을 불러일으켰다. 갑작스러웠던 ‘대왕고래’ 프로젝트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산유국의 꿈을 제시해 낮은 국정 지지율을 만회하고 싶었겠지만,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기에 그 꿈은 더욱 의심을 받았다.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산유국의 꿈’을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그는 브리핑 이틀 만에 한국에 입국했다. 석유 시추 계획에 대한 의심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세금 체납 등 그의 과거 행적이 의심을 깊어지게 할 뿐이었다.12월16일 밤, 첫 번째 탐사
손을 들어 인사하며 걸어오는 당당한 사람은 18년 동안 최고 권력을 쥐고 있다 부하에게 암살당한 자다.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자다. 이 부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다. 자신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았으니. 무수히 작은 흑백 영정으로 놓인 사람들은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다. 자신들의 존재가 잊히었으니.
살기 위해 그들은 공중에 올라갔다. 살기 위해 공중에서 구호를 외치고 끼니를 때우고 뜨개질을 하며 일기를 쓴다. 본래 저 높은 공중은 아침 햇살을 물어오는 새들의 것. 자유로 평온하며 꿈으로 설레는 곳. 세상은 노동자를 공중으로 내몰지만 날개 없는 공중은 벼랑처럼 무섭고 어둠처럼 외롭다. 잠시만 버티면 되겠지. 다 잘되어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잠시는 한 달이 되고 석 달이 되고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아, 공중은, 저 눈부신 공중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공중이 아름다운 것은 지상을 내려다보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