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비둘기’ 날린 어느 민주 교도관 정희상 기자 ‘민주 교도관’으로 퇴직한 뒤 ‘민주 경비’로 인생 2막을 살고 있었다. 한재동씨(71). 지난해 개봉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2004년 교도관을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출근한다. 근무처는 경비실. 그를 만나 ‘1987 비둘기(감옥에서 몰래 보내는 편지)’부터 물었다. “부영이 형이 자료를 넘겨주면서 ‘재동아, 일이 잘못되면 큰일 난다. 발각되면 너나 나나 죽을 수도 있어.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고 했다. 긴장... 평범한 사람들이 1987년 6월을 달구다 김형민(SBS Biz PD)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정 체제인 제6공화국을 탄생시킨 건 1987년에 일어난 6월 항쟁이었어. 아빠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야. 고달픈 고3 생활 속에서도 거의 모든 국민이 떨쳐 일어나 전두환 정권의 멱살을 거머쥐고 ‘독재 타도’를 외쳤던 그해 6월의 기억은 선명하구나. 부산 서면 거리에서 대학생 형들은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동요를 이렇게 안철수의 재도전 판돈이 달라졌네 천관율 기자 안철수가 부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대선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총선 약진으로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문재인은 살아남았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더민주가 수도권 압승과 영남 진출로 원내 1당이 되면서, 호남 참패라는 부담은 안았지만 일단 책임론에서 벗어났다. 야권의 리더십은 당분간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의 치열했던 대선 레이스에 이은 2회전이다. 더민주에 비노계 대선주자가 여럿 포진해 있고 국민의당에 호남 블록이 공고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여론은 22번째 희생 조남진 기자 경찰의 방해 속에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어렵게 추모제단이 마련되었다. 4월5일 저녁 천주교 예수회의 추모미사가 끝나자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얼굴 없는 고인의 영정 앞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렸다. 벌써 22번째 희생이다.쌍용차 해고자 이윤형씨(36)가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은 지난 3월30일의 일이다. 2 대한민국 청춘들 안중근에 미치다 주진우 기자 안중근 의사는 남과 북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남과 북이 함께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데는 꼭 100년이 걸렸다. 3월26일 중국 다롄에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와 조선종교인협의회(회장 장제언)는 손잡고 추모미사를 열었다. 함세웅 이사장은 “안 의사가 순국하신 지 100년이 되는 날 최초로 남북의 동포 끝나지 않은 용산, 2009년 12월32일 장일호 기자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씨는 수의 안에 다섯 겹의 내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그였다. 지난 12월30일 오후 1시 서울구치소, 1심 재판 이후 더 말라 수척해진 이충연씨가 아내 정영신씨에게 물었다. “대충 얘기 들었어. 잘된 거야?” 아내 정씨는 대답 대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구치소 유리벽 너머, 아 영정으로 만난 눈물의 부자 상봉 장일호 기자 1월6일 저녁 6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옆 천막으로 향하는 전재숙씨(고 이상림씨 부인)의 발걸음이 바빴다. 전씨가 천막에 들어간 지 1분이 지나지 않아 사제단 천막 안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전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구치소 담장 안에 수감 중인 아들 이충연씨가 “구속 집행 정지 처분 화마에 울부짖고 냉대에 분노한 용산 참사 유가족 정희상 기자 서울 용산역 앞 남일당 참사 현장에는 지난 1월20일 경찰의 강경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 숨진 고 이성수·윤용헌·이상림·양회성·한대성 씨 등 다섯 철거민의 영정이 덩그마니 놓여 있다. 벌써 340일이 지났다. 그날 이후 단잠과 단밥을 빼앗긴 용산 참사 유가족은 4계절을 돌아 다시 찾은 이 엄동설한에 아직도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다. 철거민 사망자의 시신은 여전히 순천향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보관된 채 기약 없는 장례식을 기다린다.2009년 한국 사회는 굵직하고 충격적인 사건·사고로 얼룩졌다. 그 가운데 용산 ‘남일당 성당’ 24시 장일호 기자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던 문규현 신부가 쓰러졌다. 다행히 의식을 일부 회복했지만 문규현 신부 입원을 계기로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왜 천주교 신부들은 유독 용산 참사에 매달리는 것일까? 이를 바라보는 유족들의 심정은 어떨까?“힘들지만 잘 이겨내게 해달라고, 내가 판단을 잘못하면 잡아달라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 힘들 아내의 비통한 외침“내 남편 돌려달라” 정희상 기자 시커멓게 불탄 남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냉동고 곁에서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부여안고 100일째 눈물로 지새는 여인 5명이 있다. 용산 참사 희생자 부인들이다. 서울 한남동에 자리한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는 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 12명이 한데 모여 생활하고 있다. 그중에는 아빠를 잃은 중·고생 3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3월 새 학기가 시작된 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