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월10일 헌법재판소 합헌의 명령으로 ‘이명박 특검’이 예정대로 진행되게 됐다.
특검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육박전으로 국회가 난장판이 되고 나서야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특검으로 가는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특검을 철회하자고 주장하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꺼냈다. 한나라당은 특검법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특검법 당사자 6명은 특검법이 헌법을 위배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BBK 특검법은 이미 한 차례 헌법 소원이 각하된 상태였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기 사흘 전, 부실 수사로 특검에 이르게 한 법무부는 특검법이 전면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그렇다면 법무부는 지난날 ‘위헌’적인 특검법에 계속 침묵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헌재의 같은 요청에 대법원은 ‘의견 없다’고 했다. 더구나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BBK 재수사 지휘권 발동을 거부하는 대신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특검이 고비를 맞는 듯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주변에서는 특검이 출범하기도 전에 끝난다는 말이 정설로 돌아다녔다. 9일 검찰이 김경준을 회유했다는 메모를 보도한 〈시사IN〉을 고소한 것이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10일 우여곡절 끝에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특검호가 출범했다. ‘정치 검찰’에 이어 ‘정치 법무부’라는 오명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때문에 정성진 법무부장관이 정치적이라는 뒷말이 일었다. 감찰 간부들조차 “이명박 당선자에게 줄서기 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길어봤자 40일짜리의 역대 최단기 특검. 그러나 수사팀에는 참고인에 대한 동행명령권이 없다. 영장 없이 구인 가능한 동행명령권은 시행 중인 삼성특검법에도 들어 있는 조항이다. 서울 도곡동 땅과 다스 실소유주 관련 논란에서 핵심 참고인인 이 당선자의 맏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 이 당선자의 최측근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 등은 검찰 수사에 지극히 비협조적이었다. 이들이 헌재에 위헌 소송까지 낸 점을 감안하면 특검 수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인을 강제 소환하지 못하는 점은 특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소환에 응한다고 해도 참고인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특검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때문에 특검이 검찰과 다른 결과를 내놓으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드문 편이다. 사실 그동안 특검이 ‘특별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경우는 많았다.

ⓒ시사IN 윤무영‘이명박 특검법’ 헌법 소원 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1월10일 헌법재판소 앞. 특검에 대한 견해가 다른 두 사람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자가 소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BBK 특검법이 탄생한 까닭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서면 조사만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안 부르면 부실 수사라고 욕먹을 게 뻔해서 특검이 당선자를 부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선자를 직접 조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수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일단 소환이 이루어지면 김경준씨와의 대질 조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성사된다면 특검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이 당선자는 후보자 신분일 때 “검찰이 나를 조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라며 검찰 출석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 견해에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정호영 특검은 이명박 당선인 소환 조사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필요하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을 그것도 가장 힘이 셀 때 수사해야 한다는 점이 특검의 고민을 깊게 한다.

특검이 가장 먼저 규명해야 할 의혹은 이명박 당선자가 BBK의 주인이 아니라는 검찰 수사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BBK를 설립했다”라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은 특검의 직접 계기가 됐다.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가 BBK를 자기 회사라고 증언한 테이프를 들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던 인사가 또 있었다. 이 인사는 광운대 동영상과 다른 테이프를 지니고 있었다. BBK를 자기가 설립했다는 각종 언론 인터뷰, 증언, 명함 따위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이 당선자에게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 직전처럼 이명박 후보와 관련해 자신이 쓴 신문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기자, 국감에서는 기억 못하던 사람이 검찰에 오니 별안간 생각난다며 이명박 후보를 옹호하던 사업가 등이 진실 규명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사IN 윤무영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BBK를 설립했다”라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은 특검의 도화선이 됐다(왼쪽). 오른쪽은 1993년 당시 이명박 의원이 도곡동 땅을 처남 명의로 숨겼다는 세계일보 기사.
특검 수사에 외관이 있다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BBK 소유 여부보다는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가 많다.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가 국회의원 시절 도곡동 땅을 처남 명의로 숨겨두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1993년 3월27일자 〈세계일보〉는 “민자당 이명박 의원이 1985년 현대건설 사장 재직 때 구입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시가 150억원 상당 땅을 처남 명의로 은닉한 사실이 26일 밝혀져 이번 재산 공개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짜에 〈경향신문〉도 “이명박 의원도 1985년 현대건설 사장 때 사들인 도곡동의 시가 500억원어치 땅을 처남 명의로 해놓고 있어 자산의 소유 사실을 고의로 감추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제와 함께 도곡동 땅 매각대금 17억여 원이 (주)다스로 유입된 점 등은 이명박 당선자가 재산을 차명 소유했다는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는 의혹과 직결된다.

BBK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회유와 편파 수사 여부 등도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다. 검찰은 지난 연말 〈시사IN〉이 보도한 메모의 진위와 유출 경위를 집중 수사했다. 또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조사한다면서 김씨의 변호인 김정술 변호사를 소환·조사하기도 했다. 메모를 폭로한 뒤 검찰이 유출 경위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 김경준씨는 대단히 힘들어했다. 누나인 에리카 김씨를 소환하겠다고 하자 김경준씨는 한때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김경준씨 측은 특검에서 적극 생각을 밝히겠다고 한다. 에리카 김씨도 검찰의 회유·협박 부분에 관해서는 특검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김씨의 장인 이두호씨는 “특히 검찰이 회유·협박한 부분에 대해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라도 밝히겠다. 메모가 공개된 이후 미국에 있는 사람을 소환하겠다고 위협하는 검찰의 행위도 특검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두호씨는 “집사람이 검사에게 설득당한 사실, 사위가 회유받았다고 내게 말한 이야기, 메모지 이야기 등 할 말이 많다. 특검에서 조사를 잘 받아 거짓말하는 장본인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처벌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정 특검은 “검찰의 회유와 협박 부분이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며 검찰 협조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에서도 수사는 상당 부분이 현직 검사의 몫이다. 검사가 검사의 수사를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 “BBK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대통령에 당선한다 해도 직을 걸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자의 말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 2000년 서울 광운대학교 특강에서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라고 밝힌 동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도 두루뭉수리하게 얼버무렸다. 특검에서 비교적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당선자 측은 무시 전략을 쓰고, 보수 언론이 이를 방어하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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