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정희상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가 정·관계 로비 발판으로 삼은 부산시 연제구 연산 8동 2만7천여 평의 재개발 아파트 부지.
9월6일 오후, 먹구름이 잔뜩 낀 부산시 연산8동 2만7천여 평의 재개발 터는 흉물스러운 건축물 잔해와 포클레인, 덤프트럭, 이삿짐 화물트럭 등이 뒤엉켜 있었다. 단독주택은 이미 철거가 완료된 상태였다. 라디오에서는 때마침 부산지검이 건설업자 김상진씨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가 되돌려줬다고 주장한 이위준 연제구청장을 소환키로 해 부산 지역 정가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철거 현장 근처 약국에 들어서니 지역 주민 4명이 모여 앉아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을 싸잡아 성토한다.

“이곳 연산동 재개발 부지는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상징이다. 청와대든 국회의원이든 구청장이든 믿을 X 하나도 없다” “부산 정치인들이 와 이리 썩었노, 챙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뉴시스김상진씨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 돌려줬다고 주장한 뒤 검찰에 출두하는 이위준 연제구청장.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뒤 ‘권력형 비리’로 번져가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서울의 시각과 부산 현지의 온도차는 컸다. 부산 정가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 부산 지역 인사들은 더욱 불안한 듯 보였다. 한나라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부산만 해도 시골이나 다름없어 정파는 나뉘어 있어도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김상진씨의 로비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김상진씨와 ‘노무현 사람들’ 사이의 연루 의혹은 크게 4가지이다. 김상진씨로부터 2천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받은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이 김씨의 부탁을 받고 정상곤 부산지방국세청장과 세무조사 무마용 청탁 만남을 주선해주었고, 그 자리에서 정 전 청장이 김씨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후원 기업인인 부산 서봉리사이클링 문정현 회장이 김씨의 연산동 철거 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노 대통령의 처남 권기문씨는 김상진씨가 연산동 사업을 위해 우리은행에서 1천3백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주택금융사업단 부장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호 의혹을 사고 있다. 이밖에 김상진씨가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소속했던 ‘법무법인 부산’의 의뢰인이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운다.

ⓒ연합뉴스연산동 재개발업자 김상진씨와 유착해 권력형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그러나 한 꺼풀 더 벗기고 들어가면 김상진씨의 정·관계 인맥 관리와 전방위 로비 행태는 한나라당에 더욱 집중되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부산지검이 김상진씨 주변을 파헤칠수록 여당과 청와대보다 야당인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은 한나라당의 아성이다. 1990년대 초부터 이 지역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이 사실상 싹쓸이해왔다. 16개 구청장 모두 한나라당이거나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이다. 시의회 의원들 가운데 비한나라당 의원은 대통합민주신당 1명과 민주노동당 1명뿐이고, 그나마 모두 비례대표 의원이다. 기초의회 의원까지 모두 합쳐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10명이 채 안 된다.

부산의 여야, 방어적 연대의식?

연산동 재개발 사업과 같은 주택 재개발 사업의 인·허가권은 각 구청에 있다.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위락시설의 도시계획 변경권은 부산시에 있다. 결국 부산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를 장악한 한나라당에 연줄을 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김상진씨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부산 연제구 국회의원인 김희정 한나라당 의원에게 후원금 5백만원을 준 것으로 드러났고, 이위준 연제구청장에게는 1억원을 전달했다 되돌려 받았다. 해운대 기장을 안경률 의원의 전 측근 2명은 김상진씨의 회사에서 이사로 일한 적이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 밖에도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 서너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부산시청의 한 관계자는 “김상진씨의 형 김효진씨가 5~6년 전부터 부산시청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두 형제는 주로 부산시 고위 공무원 출신 남 아무개씨와 과거 시장선거 때 자금조달책을 맡았던 김 아무개씨를 매개로 시청에 로비를 시도했다”라고 말했다.

김상진씨 형제가 정·관계 로비 창구로 활용했다는 남 아무개 전 프리마호텔 사장은 부산 지역에서 한나라당 선거만 오랫동안 맡아온 사람으로 핵심 브로커로 통한다. 고 안상영 전 시장의 인척인 김 아무개씨도 비슷한 경우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과 관계가 깊고, 지난 2004년 부산 구치소 수감 도중 자살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측근이다. 두 사람은 민락동 미월드 부지 개발에 특히 눈독을 들였다는 것이 부산시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시사IN 정희상용도 변경을 둘러싸고 '김상진 게이트'의 또 다른 온상으로 지목되는 수영구 민락동 미월드 놀이시설.
한나라당이 김상진씨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짓고도 특검 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대로 파헤쳐 들어가면 우군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부산에서는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전국을 휩쓸었던 ‘바다이야기’ 파문 한가운데 등장한 핵심 인물로 김정삼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던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의 동생이다. 그가 부산 요지에 차명으로 성인 오락실을 운영해온 사실과 신개발 지역인 동부산 관광단지 인근에 땅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초기에 사건 파문은 컸다. 특히 김정삼씨가 인근 오락실 업주들로 구성된 모임의 회장 역할을 해왔다는 점까지 밝혀지면서 ‘바다이야기’는 노무현 정권 차원의 스캔들로 비화할 기세였다.

곧바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권력 실세 개입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들이 걸려들었다. 부산 지역 한나라당 몇몇 의원이 사행성 게임 제작업자들로부터 수수한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과 행사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됐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이 주관한 ‘부산디지털문화 축제’에도 게임업자들의 자금이 유입된 사실까지 공개되자, 당장 특검을 발동할 기세로 나가던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판 ‘바다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번 ‘김상진 뇌물 스캔들’도 사뭇 흡사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평범한 공갈협박 사건이 뇌물 비리로, 뇌물 비리가 권력형 ‘게이트’로 발전하는 듯하지만, 야당도 못지않게 많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목소리가 잦아드는 현상이 부산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 선거라는 변수가 있지만, 이번 사건도 지난해 ‘바다이야기’처럼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역 정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부산 시민들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야 정치권에 극심한 배신감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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