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세명대 석좌 교수(53)는 최근 몇 달 간 발을 뻗고 잔 적이 없다. ‘봉이 이선달’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지난 11월 말부터 그는 일주일 동안 그 누군가에게 뭔가를 알리기 위해 10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보냈고, 휴대전화도 배터리를 하루에 두세번 갈아낄 정도로 많이 써 12월 요금이 족히 100만원 이상 나올 것 같다.

그 뭔가와 그 누군가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대학원)’과 예비 학생들. 저널리즘 스쿨은 국내 첫 시도다. 현재 100여 개 대학에 120여 개 언론학부(과)가 있지만, 실무 중심의 저널리즘 스쿨이 설치된 곳은 없다. 이미 한의대로 ‘뜬’ 세명대는 저널리즘 스쿨을 학교의 양대 핵심 동력으로 설정했다. 이론에 치우쳐 언론사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언론학계 현실에서 저널리즘 스쿨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커리큘럼도 기존 언론학과와는 판이하다. 기사 쓰기와 외국어 구사라는 실무 능력은 기본이고 인문사회학 소양과 역사의식·윤리의식을 기를 수 있는 과목이 다수 개설된 것이다.

‘언론대학원 많은데요?’ 하는 교육부 당국자의 몰이해와 시큰둥한 첫 반응부터 학교 내부의 반발에 이르기까지 힘겨운 과정을 돌파했지만, 그를 괴롭힌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과연 우수한 학생이 올까? 충북 제천까지?”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와 누구를 뽑을지 즐거운 비명을 질렀으니 말이다.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 교수는 한겨레 창간 때 자리를 옮겼다. 언론계에서 그는 손꼽히는 경제 전문기자로 통했다. 경제부장까지 한, 시쳇말로 잘나가던 그가 2000년 돌연 사표를 던졌다. 영국으로 유학 간다는 거였다. 외환위기 발발에 책임이 큰 한국 언론이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경제 외적 요인을 찾으려는 이유에서였다. 런던 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6년 만에 ‘미디어와 경제 변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그와 가족은 더할 나위 없는 고생을 했다.

저널리즘 스쿨을 만드느라 그는 한국과 영국에서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내겠다는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다. 20여 년간 시의성을 좇아온 그로서는 얼마나 속이 탈까 싶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