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김상진씨 유착 의혹 수사 방향을 브리핑하는 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의 김상진씨 불법 로비 연루 사건이 터진 계기는 부산 하늘건설 재무팀장 진성표씨(39)의 제보였다. 진씨는 김상진씨 회사의 재무팀장을 지내 불법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가 지난 4월 김상진씨에게 배신의 칼을 들이밀었다. 10억원을 주지 않으면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진씨와 함께 김상진씨의 부산 연산동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토지 매입에 참여했던 이 아무개씨도 협박에 가담했다. 이때 진씨와 이씨는 김상진씨로부터 각각 10억원씩 모두 20억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김상진씨는 갑자기 6월7일 두 사람을 검찰에 공갈협박 혐의로 진정했다. 이 과정에는 부산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경기지방검찰청 산하 김 아무개 지청장이 개입돼 있다. 함께 골프를 치던 김상진씨가 ‘협박을 당하고 있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자, 김 지청장이 ‘사법기관에 진정을 내라’고 권유했다. 김씨의 진정에 따라 검찰에 검거된 두 사람은 수사에 순순히 응했고, 혐의 사실도 대부분 시인했다. 아울러 자신들이 알고 있던 김상진씨의 비리와 뇌물 로비에 대한 것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고, 이 과정에서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에 대한 뇌물 로비 단서가 드러난 것이다.

이미 밝혀진 것처럼, 김씨는 오래 전부터 여야, 친노, 비노, 반노를 가리지 않고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라면 접근을 시도했다. 이렇게 쌓은 인맥을 동원해 김씨는 교묘히 법망을 피해나갔다. 김씨는 지난 2월과 5월에도 차명 계좌를 이용한 주가조작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금감원 조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을 면했다.

친노·반노 안 가리는 ‘무차별 로비’ 귀재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탈세 문제도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정상곤 부산국세청장에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빠져나갔다. 과거 행적들을 볼 때 김상진씨는 진씨를 혼내주는 선에서 자신이 빠져나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두 사람을 검찰에 진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일이 커진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첫째, 부산지검 일부 검사들의 성향이다. 부산지검에는 현 정권 초기 대선자금 수사나 특검에서 권력 핵심을 건드렸다가 인사에서 ‘물 먹은’ 검사들이 있다. 이들이 김씨가 청와대를 비롯해 정·관계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나자 더욱 철저히 조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원하는 선에서 수사가 끝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처음에 ‘깜도 안 된다’라고 큰소리쳤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현 정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검사들이 털어서 나온 것이 없다면, 정말 별것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김상진씨 자신이다. 김씨는 처음부터 수사 과정에서 뇌물 로비 의혹을 철저히 부인했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지난 8월 김상진씨는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줄 1억원이 든 현금 가방을 들고 김해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이 가방이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김해공항 국내선 출발장의 보안감독관 심 아무개씨(36)는 X-선 감식기에 1만원짜리가 가득 든 여행용 가방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가방 속 물건이 뭐냐고 묻자 김씨는 ‘돈’이라고 답했고, ‘얼마나 되느냐’고 다시 묻자 ‘1천만원씩 열 뭉치’라고 대답한 뒤 뭐가 문제냐고 항의했다. 국내선이라 김씨의 ‘돈가방’은 공항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러나 공항 보안담당 직원들에게 거액이 들어 있던 돈가방은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검찰 수사 팀이 이 사실을 확인해 추궁하자 김씨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곧바로 정 전 청장이 수사선에 오르고, 정 전 청장을 소개한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 이름도 튀어나왔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정 전 청장은 정윤재 비서관만 믿고 검찰에 자진 출두를 했다가 그대로 구속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 전 청장의 구속을 억울하게 여긴 그의 가족이 관련 사실들을 일부 언론에 흘리면서 국세청 고위 관리의 개인 비리 사건은 정윤재 전 비서관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사건이 커지자 검찰은 여론에 떠밀린 채 재조사를 벌여 지난 7월 하순 보석으로 풀어줬던 김상진씨를 9월11일 다시 구속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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