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1991년 가을에 예전 〈시사저널〉의 박순철 편집국장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성적을 매겨보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의 정치 기사란 정치 파벌의 보스나 중간 보스, 또 그들 간의 갈등이나 이합집산을 중계하는 것이 주류였다. 국회의원 중 누가 어떤 법안을 발의하고, 누가 세비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본회의나 상임위 결석하기를 밥 먹듯 하는지는 어떤 언론도 관심 밖이었다.

평가 보고서를 보도하자 정가는 충격을 받았다. 국회의원의 본업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가장 큰 혜택을 본 이는 단연 의정활동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평민당 이해찬 의원이었다. 그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 김대중 총재의 눈 밖에 난 탓에 다가오는 총선에서 공천받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의정활동 성적표 덕분에 그는 이후 내리 4선을 더 했고, 총리까지 지냈다.

그 기획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숨은 공로자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서울대학 행정대학원 김광웅 교수였다. 그는 지도하던 대학원생들과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기획을 함께 진행한 뒤 김 교수와 〈시사저널〉 기자들은 가까워졌다. 김 교수는 의정평가 외에도 〈시사저널〉이 했던 많은 기획에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기자들이 〈시사저널〉과 결별했을 때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한 이가 바로 김 교수였다. 그는 기자들이 힘들 때 언제나 힘이 돼주었다.

바로 그 김광웅 교수가 새로 〈시사IN〉의 식구가 됐다. 그는 12월1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행인 겸 대표이사에 취임한다. 1940년생으로 2006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김 발행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다. 한국행정학회·한국공공정책학회·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을 지내 학계와 정·관계에 두루 발이 넓다. ‘사나운 기자들과 왜 얽히려느냐’는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발행인 직을 수락한 그는 “기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예전부터 어떤 식으로든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번 임시 주총에서 증자와 이사진 선임을 완료해 〈시사IN〉은 자본금 30억원 정도 규모의 당당한 회사 꼴을 갖추게 됐다. 최대 주주의 지분율이 20%가 넘지 않을 정도로 회사의 지배구조가 건전하다. 수습기자 모집에도 700명 가까운 인원이 몰렸다. 새내기 기자들은 새해 벽두에 합류한다.
기자들끼리는 산채를 튼 도적들처럼 아무렇게나 어지르며 살았는데 앞으로는 아래 위로 예의를 좀 차려야겠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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