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제공1961년 8월28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왼쪽)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국가 권력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손바닥과 국민의 무관심 혹은 집단적 편견이라는 손바닥이 마주쳐서 진실이 왜곡, 조작되는 결과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에도 그런 아픈 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5·16 쿠데타 이틀 후인 5월18일 알 수 없는 혐의로 체포되어 5개월 만에 간첩, 북한 찬양 등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사형이 집행된 사건의 진실을 찾는 실마리이다.

이 사건 판결에서는 여러 가지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재판을 담당한 혁명재판소 관련 법과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 근거법인 특수범죄처벌법이 피고인을 체포하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제정된 사실이 밝혀졌다. 특정인을 제거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률까지도 임의로 만드는 무소불위의 권력 행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용수 사형 집행 기록, 단 한건도 없어

또 법령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등 사형, 무기형이 확정된 중대한 사건의 기록은 ‘영구 보존’하도록 되어 있는데, 조용수 사건의 기록은 국가기록원·법무부·국정원 등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조용수와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수사·재판 기록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출발점이자 대부분의 경우 유일한 방법이다. 재판 기록은 국가기관만이 손댈 수 있다. 누가, 왜 없앤 걸까.

법원은 당시 수사기관이 법률을 위반하고 피고인을 영장 없이 체포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 구속 기간 제한도 위반해 장기간 구속하는 불법체포 감금죄를 저지른 사실도 밝혀냈다. 위법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된 점을 인정하고 다시 재판을 진행해 억울한 판결을 번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아직 확정 판결을 받은 상태가 아니라서 모든 사실을 단정할 수는 없다. 앞으로 재심 재판을 통해 국가가 저지른 인권 유린과 진실 은폐의 사실이 더 많이 확인되고, 그 과정에서 최종적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되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한다고 유족의 한이 풀릴 리도 만무하다.

억울하게 간첩의 누명을 쓰게 된 사건들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는 것은 수십 년 동안 가슴에 박혀 낙인이 된 ‘간첩’이라는 대못을 뽑는 것과 같다. 오랜 기간 감옥에서, 사회에서 당사자가 못 박힌 가슴을 부여잡고 넘어야 했던 삶의 고갯길은 일반인이 감히 상상도 못할 험로이다. 평온한 일상 중 갑자기 수사기관에 끌려갈 때부터 그들은 직장에서, 동네에서,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사회에 발 붙여보려 몸부림을 치지만 가는 곳마다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냉대뿐이다. 결국 산으로 들어가 말 못하는 벌과 함께 꿀 재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 친구마저 ‘그러고 보니 그 친구 행동이 뭔가 이상했어요’라고 유죄의 증언자로 돌변한다. ‘친구의 진심을 믿는다. 간첩일 리가 없다’고 진술한 친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고초를 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지도 자신의 삶을 지키려면 피고인의 곁을 떠나야만 한다. 피고인에 대한 유죄 선고는 한 번의 방망이질로 끝나지만 그 울림과 파장은 일가친지에게 평생토록 치명상을 입힌다. 공무원인 배우자는 상사와 동료의 강압, 따돌림으로 사표를 내야 하고, 대학을 다니던 자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

재심 재판은 이들의 억울함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가슴의 대못을 뽑는 것에 불과하다. 약간의 금전 배상으로 대못이 자리했던 그 텅 빈 구멍을 다 메울 수는 없다. 재심을 통한 진실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모자란다. 국가는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그 죄과를 반성하며, 앞으로 국가에 의한 진실 왜곡이 불가능하도록 제도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자명 송호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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