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


인류의 조상은 꽤 오랫동안 사냥을 위해서 산과 들을 누비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외상을 입거나 내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상처가 덧나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었다. 인류에게 하나의 ‘등대’가 되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먹이가 되었던 동물이었다. 당시 인류는 동물이 어떤 풀을 먹고 안 먹는지, 상처가 났을 때 어떤 식물을 먹는지 따위를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을 관찰하고 무수한 경험을 통해서 점점 의약과 의술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기원전 1552년에 발간되었다는 에버스 파피루스에 기록된 700종의 약물 이름과 811종의 처방이다. 250년에 발행된 〈신농본초경〉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65종의 생약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우리는 자연의 생태와 현상에서 과학 원리나 사실을 발견해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응용하는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인류가 진화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의약 분야에서는 자연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있다. 천연물(동물·식물· 미생물·광물)을 실생활에 응용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 난치병(암·비만·고혈압 등)이 늘고 있는데, 아쉽게도 현대 의약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의학자들이 천연물 소재와 전통 의약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그 성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천연 추출물 제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분야에 심혈을 쏟고 있다. 전통 약물에 대한 자료와 경험이 풍부해 기술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2000년 4월, 과학기술부는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을 발족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로 자생식물을 연구해 고부가가치 천연물 의약품과 기능성 식품의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결과 뜻 깊은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은 만성 난치성 질환에 효과가 뛰어난 천연 물질을 다수 발굴해 상품화했다.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가 있는 다래 추출물과 황금 같은 생약재에서 추출한 관절염 개선 효능 물질이 그것이다.

다래 추출물 기술, 미국에 210만 달러 받고 이전

현재 다래 추출물은 미국 기업에 기술선급료 210만 달러를 받고 기술 이전을 했으며, 국내 대기업에서도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황금 등의 생약재에서 추출한 관절염 개선 효능 물질(유니베스틴케이)은 이미 상품화해서 2006∼2007년 현재 2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에는 가시오가피·인삼·오미자 등의 자생식물에서 퇴행성 뇌질환을 예방?치료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천연물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전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간섬유화(간경화) 천연 치료제 개발, 성기능 개선 물질의 임상시험 수행, 간기능 개선물질 개발, 항알레르기 천연물,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시 세포의 생존율을 높여주는 치료 물질, 고지혈증과 비만에 유효한 지질대사 저해활성 물질, 항암 활성 및 암전이 억제 물질, 신경 보호용 기능성 식품, 운동능력 향상 물질, 성장호르몬 유발 물질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가 있는 천연 물질이 전임상 또는 임상시험을 위한 후보 물질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몇몇 물질은 이미 상품화 과정에 있다. 이 외에도 저장물 해충 및 식물 병원균에 유효한 물질, 미백 활성 물질, 천연 살균제 따위 의약 외적인 용도로도 개발되는 물질이 적지 않았다. 

현재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에서 수행하고 있는, 천연 물질을 이용한 임상시험 또는 전 임상시험 과정에 있는 질환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코드명은 개발회사의 비밀사항임). ①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를 대상으로 DA-9701의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제2상 임상시험·동아제약) ②신장염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제2상 임상시험·동화약품) ③성인에서 UG0712의 운동능력 개선, 운동 후 피로회복 효과에 대한 평가(제1~3상 임상시험·유니젠) ④피퍼롱구민의 피부 미백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키맥스) ….

이들 사업을 통해서 국내에 없던 식물 분야의 인프라 사업 식물추출물은행과 식물유전체연구및종자은행 연구 및 그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체계적으로 잘 분류되고 연구된 자생식물을 활용하여 고부가가치의 천연물 의약품, 기능성 식품 의약, 천연 산업소재, 유용 유전자 발굴 및 형질 전환용 식물 등의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는 생물자원 주권 시대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생명과학 시대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 성과는 대부분 시장 선점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되며, 향후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선진국 기준의 임상시험을 거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내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기자명 이형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신약연구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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