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국제 뉴스를 보면 일부 국가의 인터넷 통제에 대한 욕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중국에서는 반체제 인사들의 구글 계정에 대해 정부 당국이 나서서 해킹을 지원한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미국과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사실 이제까지 중국 공산당의 검색 금칙어 등 인터넷 내용 검열 요구에 구글이 순순히 응해온 것에 대해 전 세계 비난 여론이 거셌던 터였다. 지난해 구글 소유의 유튜브가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자세와는 다른 사뭇 실망스러운 태도였다. 아무튼 이번 중국 내 해킹 건으로 말미암아 구글도 정신이 좀 깰 듯싶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터넷 상황도 폭풍전야라는 느낌을 준다. 지난해 12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인터넷 내용 규제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면서 녹색당, 시민단체, 지식인과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반발을 샀다. 급기야 누리꾼들이 인터넷 ‘블랙아웃’(홈페이지 초기화면을 시커멓게 표시하고 그 위에 정부 검열에 저항하는 문구를 새기는 행위) 주간까지 선포하면서 커다란 시민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누구보다 오스트레일리아 인터넷의 내용 검열을 주도하는 인물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보통신부 스티븐 콘로이 장관이다. 그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필터링과 ‘부적절한’ 사이트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골자로 한 내용의 규제 법안을 밀어붙이려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내용 규제에 대한 여론이 그와 정부 쪽에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인터넷 실명제

ⓒ참여연대 제공1월25일 박경신 교수(왼쪽) 등이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 일로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 학자들의 초청을 받아 울런공 대학에서 연사로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워크숍 주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인터넷 통제와 검열’이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인터넷 필터링 법안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그들이 내게서 듣고 싶었던 얘기는 한국의 인터넷 검열 사례였다. 한국 인터넷 현실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고 이에 대비하자는 심산이었다.

실제 오스트레일리아는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수준만 따지면 한국에 비해 한 수 아래다. 그렇다보니,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난 인터넷의 논쟁적 이슈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제 속속 사회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인터넷 내용 규제 논쟁이 10여 년 전 국내의 ‘내용등급제’ 도입 때와 너무도 닮았다. 아직은 희망이 보이는 그들에게 나는 국내 인터넷 검열의 사례를 들었다. 일제강점기의 주민등록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신상 정보를 관리하는 표준으로 쓰이는지, 이것을 중심으로 어떻게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인터넷 실명제’가 연동되는지, 우리의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어떻게 사전검열 효과를 발휘해왔는지, 국정원 등 정보기관에 의한 인터넷 패킷 감청이 어떠한지, 촛불정국 이래 ‘삼진아웃제’와 ‘사이버 모욕죄’ 등이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따위를 소개했다.

그래도 아직은 악법을 피할 수 있는 그들의 논쟁을 부러워하면서, 필자는 돌아오는 내내 우리 인터넷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만 따져보면 우리처럼 전방위에서 인터넷을 억압하는 법안과 정책이 도입되는 나라가 도대체 있을까 싶다. 신권위주의적 정치권력에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접근이 합해져 각종 희한한 디지털 악법과 정책을 낳아왔다.

지난 1월25일, 국내 인터넷통신망법에 규정된 인터넷 실명제에 반발한 몇몇 누리꾼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제까지 이 악법이 얼마나 누리꾼에게 재갈 구실을 했는지 사회 전체에 공론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듣자하니,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인터넷 실명제를 성공한 IT정책 사례로 해외 공식 석상에서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이 들린다.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다.

기자명 이광석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