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이 남긴 것으로 알려진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격언집을 읽는 것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다.” 그 자신이 많은 격언을 남겨 격언집 단골 출연자인 처칠이고 보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무지해서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격언집·명언집 등속의 책을 좋아한다. 초등학생 시절 수업 시작 전 교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명상의 시간’ 덕분인 듯도 하다. 아우렐리우스니 파스칼이니 하는 사람들의 심오한 명언을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리도 없건만, 교장 선생님의 ‘명상의 시간’에 대한 애착은 강하기만 했다.

중국 사상·문학·역사에 관한 격조 있는 교양도서 저자로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나미 리쓰코는, 일간지 교토신문에 2007년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그믐까지 ‘이나미 리쓰코의 하루 한마디’를 연재했다. 연재가 끝난 뒤 신문 휴간일과 윤날 2월29일분을 보충하고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매일 연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계절의 흐름과 매일 매일의 날짜와 관련 있는 적절한 옛글을 찾아 고른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어린이날인 5월5일에는 서진(西晉)의 좌사(左思)가 사랑하는 두 딸을 꼼꼼하게 묘사한 ‘교녀시’(嬌女詩)의 첫 구절과 만날 수 있다. “우리 집 어여쁜 딸, 달빛처럼 희고 밝아. 살포시 화장하고 다락방에 놀면서, 거울을 대하면 방적(紡績) 일을 잊곤 하지.” 화장하고 다락방에서 노는 딸은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맏딸, 피부가 희고 밝은 귀엽기만 한 딸은 아주 어린 막내딸이다.

우리에게는 광복절이고 일본인은 종전일이라 일컫는 8월15일에는 어떤 명언을 소개했을까?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는 맹자의 말이다. 이나미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자신을 과신하는 것, 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이나미가 괜히 8월15일에 맹자의 말을 선택했을까?

〈하루 한 구절…〉에는 맹자(좌)·한비자(우) 등의 ‘살아 있는 명언’이 가득하다.

교훈·설교 냄새 짙은 말은 되도록 안 실어

명언집이라고 하지만 교훈적인 말은 드물다. 이나미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지닌 말을 골라내는 데 주력했고 지나치게 교훈적인 문장이나 설교 냄새가 짙게 풍기는 말은 가급적 피했다고 밝힌다. 드문 편이나마 교훈으로 삼을 만한 말로 예컨대 당 태종에게 신하 위징(魏徵)이 한 ‘두루 들으면 사리가 분명해지고, 한쪽만 믿으면 판단이 흐려진다’가 있다. 겸청(兼聽)하면 흥하고 편신(偏信)하면 망한다는 만고불변의 교훈. 그러나 우리 시대 리더에게 부족해 보이는 교훈이다.

명언의 울림과 느낌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명언집을 읽는 묘미라면 묘미라 하겠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8월29일에 실린 한비자의 말 ‘둘 다 이룰 수 없다’가 절실하게 와 닿는다. 전체 문장은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면 둘 다 이룰 수 없다”인데, 목적을 하나로 압축해 집중하겠다는 새해 결심의 단서로 삼아볼 참이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섣달그믐과 정월 초하루의 말이 궁금해진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한 말로 〈논어〉에 실려 있는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가 섣달그믐, 중국의 오래된 격언인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가 정월 초하루의 명언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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