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표지 문구로 이 책을 말하면 ‘아프리카를 오가며 기록한 최초의 사진 문학!’보다는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우주의 대서사시!’가 어울림직하다. 이 책을 말하는 더 정확한 표현은 따로 있다. ‘아프리카 방랑기’. 저자는 지난 10년간 케냐의 세 지역을 집중 탐색하는데, 카미오루 가족이 사는 남서부 나록의 마사이 마을, 북부의 투르카나 호수와 챠비 사막, 동쪽 해안의 라무 섬이 그곳이다.


이 중에서 나록 마사이 마을 방문기는 생동감 넘친다. 특히 카미오루 집안의 할례 의식에 초대받아 지켜본 마사이의 할례 의식 보고서는 인류학적 고찰로도 손색없다. 성감을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는 마사이 여성의 할례가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와의 성적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후지와라 신야가 〈황천의 개〉에서 한 카스트 제도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떠올린다.

 “그냥 담담하게 시체를 태울 뿐이야. 그들은 불가촉천민 중에서도 최하층이었어. 조상 대대로 수백년씩 시체를 태워왔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야기야. 사실은 이것이 카스트의 의미라고 할 수 있어. 일종의 세습인데 그 세습이 유지되는 한 거지에게도 먹고살 기회가 주어져. 태어남과 동시에 직업이 결정된다는 것은 인도처럼 풍토가 좋지 못한 곳에서는 생존의 권리라고도 볼 수 있지.”(〈황천의 개〉 135쪽)

사진작가 안영상씨의 〈나는 마사이족이다〉에 실린 사진(위)은 ‘아프리카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

하지만 나록의 마사이 마을 사람들에게 우물을 파게 하고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약간의 채소 경작을 제안한 것에서 과거 식민지 열강의 첨병 노릇을 했던 탐험가와 전도사의 그늘을 본다면 지나친 걸까? 또 이런 식의 ‘농촌 지도활동’은 “그들 자신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지론을 벗어난 월권 행사로도 보인다. 방랑이 무르익을수록 공허한 감성이 짙어지는 것은 다소 아쉽다.

 사진을 덧붙인 여행기와 여행 사진집은 글과 사진의 균형 맞추기가 관건이다. 현실은 대체로 어느 한쪽으로 균형추가 기운다. 이 아프리카 방랑기는 말이 좀 많은 편이다. 사진의 비중을 좀 높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102쪽과 103쪽에 펼쳐진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폐허로 변한 어느 행성의 우주 기지인 듯싶었다. 다시 보니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머리말에서 살짝 언급한 어떤 만남을 맺음 부분에서 부연한 것은 뜻이 있어 그럴 것이다. 투르카나 호수와 에티오피아 남부 사이의 황야를 찾아 나설 때 검은 화산돌 들판으로 들어서는 도시 언저리에서 히치하이커 두 사람을 차에 태운다. AK47 소총과 끝부분이 떨어져나간 M14를 소지한 그들은 산부루족의 전사였다. 두 사람은 산부루 사람들의 소떼를 훔쳐간 투르카나족한테 앙갚음하러 가는 중이었다. 한 전사는 도통한 듯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패배하러 가는 길이야. 물론 우리가 전투에서 이기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뭐가 남겠어? 승리는 동시에 패배야. 다만 우리 삶의 과정이기 때문에 가는 거야.”

 이 책은 내 취향 혹은 선호도와 거리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책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350만년 전 인류 화석에 루시(Lucy)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연과 비슷하다고 할지. “에티오피아 아파르(Apar) 삼각주 지역 하다르에서 발견된 ‘루시’는 화석 인골 발견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1967년)를 따서 ‘루시’로 명명되었다.” 〈나는 마사이족이다〉에 내 손길이 닿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호출을 받았다. 때로는 그런 ‘부름’에 순응해야 한다.

기자명 최성일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