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구월의 이틀〉 작가 장정일.

쓰는 작품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장정일(47)이 10년 만에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구월의 이틀〉(〈구월〉)이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장정일이 형상화하고 싶어한 것은 ‘우익 청년의 성장기’라는 정치적 주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에 대학생이 된 광주 청년 ‘금’과 부산 청년 ‘은’이 각각 작가 지망생과 뉴라이트 예비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장정일의 데뷔작 〈아담이 눈뜰 때〉(〈아담〉)는 ‘일종’의 성장소설이었다. 그는 휴지기를 거쳐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1990년대 초 장정일의 데뷔는 문학·사회적 ‘사건’이었다. 적어도 당시엔 분단과 노동착취라는 ‘현실’에 천착한 ‘민족민중 문학’이 문학계의 주류였다. 이런 분위기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진 작가가 바로 장정일이다. 그가 이른바 ‘우파’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현실’ 그 자체, 이런 ‘같잖은’ 현실을 둘러싸고 이전투구하는 정치 세력(좌·우, 민주·독재)에 대한 혐오와 거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성향은 서구에서 ‘68운동’ 이후 대중화되고 결국은 시장 상품이 된 반문화주의 운동(anti-cultural movement)의 그것과 맥락을 함께한다. 반문화주의 이념에 따르면, 자본주의체제(정확히 말하면 대량 생산·소비 사회)는 우리의 노동력을 착취할 뿐 아니라 ‘이미지 조작’을 통해 ‘소비를 쾌락’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정신과 몸을 함께 억압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대중은 ‘사회화 과정’에서 체제의 ‘감시와 통제’를 내화해버린 정신질환자들이다. 그렇다면 적(敵)은 자본이나 독재자 정도가 아니라 사회화와 사회적 규칙, 그 총체인 ‘국가 일반’이다. 체제를 변혁하려면 특정한 규칙이 아니라 규칙 그 자체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아담〉은 이런 반문화주의적 사고가 토착화된 상품이다. 원래 성장소설은 서구의 고전적 교양물로서 주인공이 갖은 경험을 통해 현실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 장르이다. 〈데미안〉 〈젊은 날의 초상〉이 그렇고, 수많은 ‘80년대’ 노동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장정일의 성장소설인 〈아담〉은, 아담이 추악한 현실에 몸서리치면서 적극적인 결별을 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고상하게 말하면 반(反)성장소설, 다르게 표현하면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다.

이런 면에서 〈구월〉은 매우 흥미롭다. 형상화된 인물과 사건, 세계관에서 〈아담〉과 거의 판박이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아담〉의 아담은 우연히 만난 연상의 여류 화가와 첫날부터 성관계를 가지는데 이는 〈구월〉의 ‘은’도 매한가지다. 성적으로 분방한 퇴폐적 매력의 이 인물 유형은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조금 악의적으로 표현하자면 청소년이 가진 성적 판타지의 현현이다. 또한 〈구월〉은, 우파가 ‘파쇼질’을 하는 것이 억압된 성적 욕망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암시하는데, 이는 반문화주의의 고전적 아이디어다.

장정일의 ‘현실’ 회귀?

그러나 〈아담〉과 〈구월〉은 공공성(국가)에 대한 관점이 판이하다. 장정일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금’은 ‘국민 작가’를 목표로 소설을 쓰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시장의 침탈을 방어하거나 시장의 압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불균형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국민이야. 이런 상황이 공적 가치의 수호자로서의 국가를 긴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면 국민작가에 대한 환상 역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거겠지.” 뉴라이트 선동가가 된 ‘은’은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죽어야 한다”라는 유치한 버전의 레오 스트라우스론(論)을 설파한다. 그러다 난데없이 자신이 보수주의자가 된 이유는 “보수가 없으면 국가나 사회도 뒤집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구월〉에서 목도하는 것은 작가 장정일이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자폐적 세계에서 ‘공공성과 국가’라는 현실 공간으로 이행하는 장면일까. 장정일은 40대 후반에 이르러 드디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 셈이다. 정말 그렇다면 〈구월〉의 얼크러지고 교착된 이미지와 논리로 독자들이 괴로워한다고 해도, 장정일은 또 하나의 성장소설로 새로운 문학·사회적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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