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표지가 부담을 주었을까. 다소 극적인 제목이 엇박자였을까. 아니면 과도한 의욕의 편집이 역효과를 냈을까.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든 생각들이다.
피렌체공화국의 최고 권력 메디치 가가 불의의 습격을 당해 줄리아노는 죽고 로렌초는 가까스로 달아나는 피렌체대성당 사건(1478년 4월26일)이 계기가 되어 피렌체를 핏빛으로 물들인 10년에 걸친 메디치가의 복수극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잘 만들어진 정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했다. ‘4월 음모’라는 폭력의 정치 극장, 그 무대 위를 역사로만 남은 이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이 활보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실제 사건과 인물이 팩션처럼 읽히는 소설적 내러티브를 가졌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었고, 그만큼 독자들과 ‘사귈’ 여지가 많다는 설렘을 갖게 했다.
저간의 피렌체 전문 작가들이 ‘창조한’ 이야기와도 많은 점에서 달랐다. 메디치 가의 설욕 순간인 1488년 4월에서 시작해 10년 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피렌체의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말 그대로 ‘재구성’한 결과물이었다. 어느 한 인물, 한 가문에 편중됨 없이 말이다. 이 같은 입체적 접근과 역동적 구성은 철저한 사료 분석과 고증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로, 단순한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고 묵직한 역사서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와 문학의 접점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성취는 성취대로, 문학적 가치는 가치대로 공존한다고 생각했다.
원제가 ‘April Blood’이니 출간도 반드시 4월이어야 한다는 당시의 다짐이 떠오른다. 그만큼 편집자로서 욕심을 냈던 책을 이 자리를 통해 다시 소개하게 되었다. 책을 펼쳐보니 편집자의 많은 다짐이 외려 이 책에 짐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재구성하는 시간, 독자와의 ‘사귐’도 재구성할 기회를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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