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학자의 인문·사회적 대담을 엮은 단행본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제재 및 주제가 선명해야 한다. 선택과 접근은 미시적일수록, 제안과 대안은 파격적일수록 좋다. 언론과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자극적인 정보 덕에 독자는 지식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담서의 제재는 두 학자의 대담 그 자체이다. 차가운 감성의 ‘디아스포라’와 뜨거운 이성의 ‘서로 주체성’이 만나 한두 음절의 어휘 선택, 한두 어절의 언어 구사에도 힘겨워하며 ‘나’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선명하지 않지만 진하고, 미시적이지 않지만 섬세하며, 파격적이지 않지만 정직하다.

둘째, 대화의 각 매듭이 굵고 단단해야 한다. 공통 분모를 확인하는 것이든 첨예한 대립 구도를 드러내는 것이든, 그 매듭은 독자 개개인이 마련해놓은 세계관·인생관·가치관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거나 어렵지 않게 첨삭되어야 한다. 저자만큼 총명하고 편집자만큼 민첩한 독자는 이미 수년 전 또는 십수년 전 삶과 세계 안팎의 패러다임과 도덕률을 각자의 처지에 맞게 정리해놓았고, ‘적정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오고 있다. 두 학자의 피드백은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의 결론을 도출해 독자에게 동의 여부를 묻거나 택일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 이 대담은 무수히 작은 매듭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를 보면 그 매듭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셋째,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시대 또는 이론이 실천을 전제하지 않는 시대에 읽히는 인문서의 효용 가치는, 슬프고 민망하게도 ‘지적 유희’와 무관하지 않다. 이 지적 유희는 이른바 논객이라는 학자 및 유사 학자의 현란한 언변까지 포함한다. 이 대담에는 그러한 지적 유희가 없다. 그 대신 ‘지적 흥분’이 있다.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손을 얹고 신음을 내게 한다.
진하고 섬세하고 정직한 이 책은, 매듭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못하게 하는 이 책은, 그렇게 천연조미료 같은 어조로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이 책은 난독증 권하는 사회에 의해 분서갱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기자명 김형렬(도서출판 돌베개 문화예술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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