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 교수(성균관대·러시아문학)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은 다룬 주제도 대단하지만 지면이 어마어마하다. 무려 864쪽. 저자 이덕형 교수(성균관대·러시아문학·사진)는 이 묵직한 저서를 만드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10년은 겸양의 말이다. 그와 러시아의 인연을 떠올리면 20년 넘게 걸렸다 해도 무방하다.

대학 시험 1차에 떨어지고 2차에 합격한 학과가 러시아어과였을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가늠하지 못했다. 대학 1, 2학년 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만나면서 비로소 그는 자신의 미래가 ‘동토의 나라’에 있음을 예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나라에 갈 수는 없었다. 적성 국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 사랑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프랑스로 날아갔고, 그곳 미셸 드 몽테뉴 보르도 3대학에서 슬라브어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1992년 귀국하려고 하니, 1년 전에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문호를 활짝 열어놓은 게 아닌가. 그는 당장 고대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으로 달려가 러시아 사상사를 공부했다. “겉모습만 알던 러시아의 실체를 만나고 보니, 훨씬 더 신비롭고 다채로웠다”라고 그는 돌이켰다. 이후 그는 대학에 둥지를 틀었고 틈만 나면 러시아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콘과 아방가르도〉 같은 러시아 관련 책을 줄줄이 펴냈다.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은 이 모든 저작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그 덕에 사진·신화·회화·조각 등을 동원해 보여주는 9~19세기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예술은 기대 이상으로 뜨겁고 신비하고 재미있고 매혹적이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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