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태씨는 자전거와 흔들말을 ‘따로 또 같이’ 재구성해 탄다.

저자 소개부터 자세히 해야 할 책이다. 연정태씨는 어려서부터 버려진 물건을 분해해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을 좋아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리학과 도시설계를 공부하고 공장에서 3년간 일하면서 공작 기술을 익혔다. 30대부터 10여 년 동안 광고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했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잘나가던 삶의 궤도는 40대에 들어서면서 크게 방향이 바뀌었다. 회사를 접고 ‘아름다운 가게’ 간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경기 양평의 한 폐교에서 ‘아름다운 자연학교’를 운영했다. 그의 새로운 직함은 ‘재활용 디자이너’.


“놀이처럼 즐겁게 작업하는 동안 유희와 노동이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 안의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와 호모파베르(기술을 사용하는 인간)가 얼싸안게 됩니다. 물건과 세상의 진짜 주인이 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연정태씨의 이 말에서 그가 디자이너 그 이상의 디자이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재활용 디자인 기술에만 밝은 게 아니라 분명한 철학과 세계관을 갖고 디자인에 임한다는 것. 예컨대 플라스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에 충분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플라스틱은 함부로 버려지거나 태워질 때에만 우리에게 저항합니다.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도 사실은 재활용 수집이나 보관 등에서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안정적인 고형 물질의 특성 때문에 토양에 저절로 침투한다든가 대기 속으로 증발하여 광범위한 오염을 야기하는 일이 적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플라스틱은 마치 생명체들의 존중받고자 하는 면을 닮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정확히 어떤 의미, 어떤 목표를 지니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뜻밖에 드물다. 연정태씨는 그런 드문 사람이다. “망가지거나 버려진 물건도 본래의 그런 기능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정한 기능이 담긴 이런 물건을 있는 그대로 조합해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일은 그래서 물건의 재구성이라고 이름 붙일 만합니다.” 사실 이 책은 못 쓰는 의자 두 개로 화장대를 만들거나, 페트병으로 지붕을 만들거나,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조명기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물건의 재구성 노하우를 담고 있지만, 그 노하우보다는 사물· 자연·환경과 생태·인생에 관한 저자의 통찰과 만나는 게 더 큰 매력이다.

놀이처럼 물건을 만들고 고치고…

“부서진 채 길가에 뒹구는 목재 가구의 잔해에도 먼 곳의 산 중턱에서 치열한 생존의 경쟁을 이겨낸,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목수가 되어도 좋겠지만, 그저 놀이처럼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려지고 베어지는 나무가 줄었으면 합니다. 아주 가끔은 나무 한 토막을 들고 조몰락거리며 나무의 결과 향기를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저자의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어린 시절 만들기 방학숙제의 추억이 떠오른다. 집 안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뒹구는 물건을 가지고  뭘 어떻게 만들까 이리저리 궁리하던 기억. 기껏 만들었다는 게 크고 작은 종이상자를 이어붙인 로봇 태권브이(?)나 거북선이었지만, 만들 때의 순수한 몰두와 만든 다음의 순진한 기쁨만은 다른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추측건대, 아니 추측이 아니라 분명하게, 연정태씨는 그런 기쁨을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누리는 사람일 듯하다. 책을 읽고 나면 당장 내 주위의 물건들, 특히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질 운명에 처한 물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궁리가 시작된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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