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국어를 잘하게 된 것은, 한국어가 필요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영어권 국가에서 자라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게 된다. 물건을 사려 해도, 수업을 들으려 해도 영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어가 필요하지 않다.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한국에서, 아이의 영어 노출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강압’에 의한 것이고, 둘째는 ‘재미’에 의한 것이다.

영어 노출 시간을 확보하되 되도록 ‘강압’을 극소화하고 ‘재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영어교육의 제일 원칙이다. 이른바 ‘엄마표 영어’의 합리적 핵심이 여기에 있다. 엄마표 영어에서 동원하는 수단은 놀이·읽기·노래 부르기·게임·영상물 등 잡다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러한 ‘잡다함’은 불가피하다. 한두 가지 방법만으로 노출 시간을 늘리려 했다가는 금방 지겨워질 테고,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만 재미를 통한 노출 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텔레비전은 최고의 영어 선생님

CD롬이나 웹을 통해 제공되는 학습용 게임도 효과적이다. 이런 게임은 비디오와 같은 일방향 매체의 한계를 넘어 상당 수준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는 장점이 있으며, 일반 게임과 달리 중독될 염려가 적다. 학원이나 학습지도 영어에 노출시키는 방법을 다양화하는 방편으로 고려할 수 있다.

‘재미’를 통해 노출 시간을 늘릴 때는, 취미나 관심사를 적극 고려하면 효율을 대폭 높일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타임〉에서 재미있는 영화 기사를 찾아 읽었고, 성생활 수기를 모아놓은 포르노 잡지의 별책부록을 보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손쉽게 영어를 접할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메이저리그(www.mlb.com)나 국제축구연맹(www.fifa.com) 공식 사이트의 동영상과 글을 활용해보라. 동물과 자연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유소년판(kids.nationalgeographic.com)을,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이근철의 굿모닝 팝스’(www.kbs.co.kr/radio/cool fm/gmp)를 권한다. 세계 정세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미국의 소리’(www.voanews.com) 뉴스를 들어보기 바란다(미국의 공보성 방송이어서 편향적이지만 가장 간명한 영어로 뉴스를 제공한다). 한국 뉴스와 한국 드라마 등을 영어로 제공하는 아리랑TV(www.arirang.co.kr)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많은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 ‘문법’을 가르친답시고 영어 문장을 난도질해서 각종 문법 용어와 규칙으로 뒤범벅을 만든다. 이것은 자칫 영어 습득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수능·토플 같은 정상적 영어 시험에서는 문법 문제라 할지라도 올바른 ‘용례’를 가려내는 능력을 요구할 뿐, 절대로 문법 ‘용어’를 외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난도질’식 문법 공부를 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중학교 시기에 아예 영어로 된 문법서를 보거나,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기본영어’급 책 중 한 권을 선정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것이다(한국어 번역문을 보고 영어 원문을 외워서 말해보는 방식이 좋다). 참고로 우리나라 학생은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사이에 학교와 학원에서 기본영어급 책을 줄잡아 네다섯 권 보는데, 대부분 진도만 나갈 뿐 그중 한 권도 제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 한 권만 완전학습하면 수능 수준의 문법 문제는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잠깐. 원론으로 돌아가서, 왜 ‘강압’에 의존하면 안 될까? 전문가들이 외국어 습득 과정에서 최고 장애물로 꼽는 것이 바로 ‘공포심’이다. 병자가 되기 전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듯, 아이가 ‘영어 울렁증’을 겪기 전에는 이를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깨닫지 못한다. 강남 한복판에도 영어 울렁증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 잘된 아이들은 언론이 홍보하고 학원이 광고하고 부모가 자랑하지만, 잘못된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기자명 이범 (교육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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