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제공요즘 파키스탄은 민주화 시위와 탈레반의 세력화 탓에 어지럽다. 김영미 프리랜서 PD(왼쪽)는 현지에서 취재하는 유일한 한국 언론인이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 도시 폐샤와르에서 북쪽 차로 4시간 거리에는 스와트라는 도시가 있다. 요즘 이곳에서는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군간의 교전이 한창이다. 탈레반 하면 흔히 아프가니스탄을 떠올리지만 파키스탄도 탈레반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이다. 지금 파키스탄은 무샤라프의 장기 집권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고 이를 무력 진압하는 파키스탄 정부에 등을 돌린 국민이 많다.  이 틈을 비집고 탈레반이 소리 없이 세력을 넓히는 것이다.

11월12일,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 지역에 저녁 9시에서 아침 6시까지 통행 금지를 발표했다. 다음 날인 13일 스와트 일대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아침 8시경부터 시작된 전투는 해가 지도록 계속되었고 탈레반 측 병사 17명과 파키스탄 정부군 2명이 사망하고 가옥 수십 채가 파괴되었다. 아직 민간인 사망자 수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민간인 사망자도 많을 것이라고 현지에서는 추측한다.  한 지역 언론인은 “아직 교전이 계속되고 있어서 사망자 집계가 모두 나오지는 않았다. 저녁인 지금도 양측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는 알카에다 지도부가 활약하고 있고 이런 알카에다를 파슈툰 부족 원로들이 보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를 잘 아는 미국이 국경 지역 단속을 주문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탈레반이 더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미 남부 발루치스탄과 와리지스탄은 탈레반 손에 넘어간 지 오래고 북쪽으로 그 세력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이 지역을 통틀어서 이른바 ‘파슈투니스탄’이라는 미니 국가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해 초 탈레반이 와지리스탄 지역에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것과 통하는 정국이다.

파키스탄 정부, 탈레반과 전쟁 시작

파슈투니스탄이라는 말은 이 지역민 대다수가 파슈툰 족이고 탈레반 역시 파슈툰 족인 데서 온 말이다. 남부 발루치스탄의 퀘타는 이 파슈투니스탄의 수도로 통한다.

ⓒ김영미 제공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 스와트 지역 주민들이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군의 교전을 피해 피난을 떠나고 있다
남부 외리지스탄에서 폐샤와르로 온 자위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 폐샤와르로 이주한 이유는 탈레반이 이슬람 학교(마드레사) 외에는 인정하지 않아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힘들어서라고 한다. 그는 “작년부터 탈레반 병사 서너명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에게 마드레사로 가라고 몇 차례 경고했다. 그래도 수업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탈레반 병사들을 본 아이들이 겁을 먹고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일부는 고향을 떠나 폐샤와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는 학생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급기야 학생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학생 없는 학교에 나가 할 일도 없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져 이곳 폐샤와르로 와서 막노동이라고 하려고 한다.”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폐샤와르는 이렇게 유입된 도시 난민이 넘쳐난다. 이렇듯 탈레반의 영향이 파키스탄 내 민간인에게 미치기 시작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이미 탈레반과 전쟁을 시작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처음부터 탈레반과 무력으로 맞선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에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후원하는 파슈툰 원로 부족들과 휴전 협정을 맺어 빼앗았던 무기를 돌려주고 잡아들인 테러 용의자도 풀어주고 그 지역 내의 파키스탄 군대를 철수 하는 등 유화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 시기에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의 충돌이 줄어들기도 했다.

ⓒ김영미 제공스와트 시내를 무장한 탈레반들이 활보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 이슬라마바드를 비롯한 파키스탄 전국이 무정부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인 페르베즈 무샤라프의 퇴진 운동이 전국에서 벌떼처럼 일어난 데다 야당들도 이에 가세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 인민당(PPP)과 함께 각종 이슬람 정당들도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이 이슬람 정당 중에는 탈레반 세력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질리스 이 아말’(MMA·연합행동 전선)과 ‘자마트 울레마 이 이슬람’(JUI·이슬람 성직자 회의) 등이 시위에 가담했다. 이들 정당은 탈레반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곳 페샤와르의 마드레사들은 과거 탈레반을 양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탈레반과 이 정당들의 구성원과는 이른바 같은 시기에 같은 마드레사에서 공부한, 다시 말해 ‘동기동창’인 것이다. 이들의 이상과 생각이 탈레반과 같은 것이다.

6년 전 필자가 이곳 페샤와르로 취재온 적이 있는데 시내에 코카콜라와 화려한 패션 간판이 걸려 있었고 벽에는 여자의 사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원리주의 정당의 입김으로 인해 모두 철거된 것이다. 시내 곳곳에 새로운 마드레사도 많이 세워졌다. 6년 전 2000명이었던 마드레사 신학생이 지금은 1만2000명 정도로 불어났다.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외국에서 모여든 10세에서 20세 가량의 청소년이다. 그들은 가난한 집에서 출생해 학비가 무료인 마드레사로 온 순진한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들은 가치관이 채 성립되기도 전에 세뇌되는 탈레반과 같은 원리주의 모슬렘이 된다.

탈레반이 건설한 '파슈투니스탄' 계속 확장 

11월12일 폐샤와르에서는 이 두 정당이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특히 시내 중심부 올드마켓에서는 두 정당 소속 당원 700여 명이 모여 “무샤라프는 가라” “이슬람이여 영원하라”며 외치며 경찰의 최루가스와 폭력에 맞서 1시간가량 시위를 했다. 이 시위를 두고 현지 언론은 속칭 ‘탈레반 시위’라고 부른다. 지역 신문 스테이트 맨의 기자 알리 굴은 “사실상 탈레반이 시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부 요원을 붙잡았다고 주장하며 증거 사진(위)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탈레반은 정치적으로도 파키스탄 정부에 개입하려고 한다. 국경지대에서는 총으로 싸우고 여기서는 정당으로 싸우려는 것뿐이다. 그 정당들은 탈레반을 등에 업고 오늘 시위에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JUI의 한 당원은 “무샤라프가 물러날때까지 우리는 싸울 것이다. 이것은 알라의 뜻이다. 무샤라프가 가고 새로운 이슬람 세력이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럼 그 이슬람 세력은 탈레반을 의미하느냐”라고 묻자 “그것은 알라만이 알 것이다”라며 모호하게 대답 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지다 보니 파키스탄 정부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탈레반은 현재 가장 위협이 되는 무력 정치 세력이다. 더 이상 회유정책으로 탈레반을 달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스와트 전투는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현지 언론인도 예측하기 힘들다. 탈레반이 건설한 ‘파슈투니스탄’은 계속 확장되리라는 것이 이곳 반응이다. 6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퇴출된 줄 알았던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국가를 세우려 한다. 

기자명 스와트=김영미 (프리랜서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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