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지난 11월14일 아침, 한 신문에 의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일부 발기부전 치료제가 ‘청력 이상’같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하고 나섰다는 보도였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FDA는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제조사에 일시적인 청각 소실의 위험성 표시를 더 두드러지게 하라고 요구했다. 사연이 있었다. 지난 4월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았다는 사례가 국제 학술지에 보고된 이래, 모두 29건의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사의 결론은 없었다. FDA가 제약사에 그렇게 요구했다는 것뿐, 제약사가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거라는 첨언은 없었다. 문제는 의약품 부작용이 발기부전 치료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세상 모든 약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세의 약리학자 파라셀수스는 일찍이 “모든 약은 바로 독이다. 다만, 사용량이 문제일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되고 안전하다는 페니실린과 아스피린조차 부작용을 유발한다.

의약품 부작용의 역사는 책으로 여러 권 펴내도 모자랄 만큼 엄청나다. 쉽게 떠오르는 부작용 사례는 대여섯 건. 1948년 19년 동안 사용한 방사선 조영제 ‘트로트라스트’가 적은 양으로도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7년에는 입덧 방지제로 허가받은 ‘탈리도마이드’가 48개국에서 1만2000여 명의 사지 결손증을 가진 기형아를 출산시켰다. 2004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이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를 복용한 2만7000여 명이 심장 질환을 일으켜 그 가운데 일부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005년, 일본에서는 첨단 약물 ‘벤즈브로마론’이 함유된 통풍 치료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 6명이 급성간염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약이 병을 만든다〉에서).

국내에서도 약물 사고는 적지 않았다. 2004년 페닐프로판올아민(PPA) 성분이 함유된 감기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출혈성 중풍을 일으켜 사망하거나, 반신마비·언어장애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렸다. 또 감기약 ‘콘텍600’을 복용한 환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는가 하면, 감기약 ‘코뚜정’을 복용한 환자 20여 명이 뇌출혈을 일으켜 운동장애와 언어장애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해열진통제 쇼크로 인한 사망과 항히스타민제가 심장부정맥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1998년,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의학협회지〉에 충격적 논문이 실렸다. 제목은 ‘입원 환자에게 나타나는 약물 부작용 발생률’. 논문을 발표한 의사들은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일어난 약물 부작용 사례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 결과 1994년에만 220만명이 심각한 약물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10여 만명이 제대로 처방한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약이 사람을 죽인다〉에서). 그들의 주장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해마다 10만여 명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여 년간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약 5만명이 사망했으니까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인들의 의약품 부작용 신고 건수는 2006년에만 무려 46만 건이 넘었다. 일본도 3만 건이 넘었다.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고작 2천467건뿐이었다. 그만큼 의사가 약물을 잘 처방하고, 약사가 안전하게 조제해서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환자가 부작용이 나타나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의사나 환자가 부작용을 확인해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고 건수가 2000건을 넘어선 것도 지난해 처음 있었던 일이다. 1988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www.kfda.go.kr)에서 부작용 신고를 받아왔지만, 10여 년간 100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의약품안전관리센터 설립 서둘러야"

신고 건수가 적은 까닭은 한둘이 아니다. 박병주 교수(서울의대·가정의학과)에 따르면, 먼저 의사·약사들이 부작용 신고 제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이다. 환자가 찾아와 부작용을 호소해도 묵살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제도를 알고 있는 국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월말, 코리아리서치가 30~69세 성인 1020명을 조사한 결과 87.5%가 이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세 번째는 병원급 의료 기관에 부작용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인력이 거의 없고, 신고를 해도 보고가 잘 되지 않는 탓이다.

인력이 부족하기는 식약청도 마찬가지이다. 접수된 신고 내용을 신속히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데, 그 일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이다. 약물 안전성 평가나 약물 역학 연구를 수행할 전문가도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 약물 유해 반응에 의한 피해를 보상해줄 피해 구제기금이 없어서이다. 현재 의약품 부작용 신고는 식약청뿐만 아니라, 지역 약물감시센터로 지정된 서울대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아주대병원·부산인제대학병원·전남대병원·천안단국대병원에서도 받고 있다.

누구보다 의약품 부작용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박 교수는 이를 위해 아예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가칭 의약품안전관리센터가 그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약물 안전성 감시 체계를 담당하고 있는 국내 전문가는 식약청의 5명(정규직 2명, 계약직 연구원 3명)뿐이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부작용 모니터링 인력 100여 명, 일본의  50여 명에 비하면 적어도 너무 적은 인원이다. 그럼 최소 인력이 얼마나 되어야 감시가 가능할까. “분야별 상근·비상근 임상의학 전문가, 약물 역학 전문가, 임상약학 전문가, 연구 간호사, 의학 통계 전문가, 전산 전문가,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행정 담당자 등이 있어야 부작용 감시가 가능하다”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언제 정착될지는 아직도 미지수. 그 사이에 많은 환자가 약물 부작용에 노출되어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의 환자들은 평균 10가지의 약을 복용한다고 한다. 중환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아서 38가지 이상 먹는다. 약을 많이 복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부작용에 노출될 위험은 커진다. 〈약이 사람을 죽인다〉의 저자 레이 스트랜드 박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만은 기억하라고 말한다. “심각한 약물 부작용은 시장에 나오기 전에 밝혀지는 것이 50%가 채 안 된다!” 결국, 약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하나다. 약의 사용법과 태생적 위험에 대해 더 많이 알아두는 것뿐이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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