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 그림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이 의학에서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페니실린의 발명으로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던 세균성 질환이 없어졌고, 아스피린의 등장으로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던 통증과 고열이 사라졌다. 지금도 ‘마법의 탄환’이라 불리는 수많은 신약이 각종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처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쓰는 대다수 약은 ‘두 얼굴의 화학물질’이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이다.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세계 의약품의 ‘안전 검사소’라 할 미국 식품의약국조차 그 부작용을 50%밖에 못 찾아낸다. 그 사이 제약사들은 더 많은 약을 팔기 위해 새로운 질환을 고안해내고, 의약품의 효능을 과장 광고해 건강한 사람까지 환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약과 약 사이에서 ‘악’을 쓰듯 그 해답에 접근해본다.
       
〈약이 병을 만든다〉를 쓴 이송미씨는 우리나라를 ‘약의 천국’ ‘약품 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만큼 많은 약이 우리의 삶을 옥죄거나, 조종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각 가정의 구급 의약품 상자를 열어보면 보통 예닐곱 가지의 의약품이 들어 있다. 기자도 이번 기회에 구급 의약품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알약 네댓 개가 혼재된 처방약 두 가지, 캡슐에 든 약 세 가지, 알약 네 가지, 연고 네 가지 등 모두 열세 종류의 의약품이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을 좋아하게 된 데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예로부터 동양의학은 약으로만 병을 치료해왔다. 그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병은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치료보다 화학적 치료를 더 선호하게 만든 것이다. “동양의학을 전수해온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사람이 약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의약품정책연구소 한오석 소장은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일종의 사대주의라 할 ‘양약 맹신주의’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양약의 효과를 체험한 사람들이 양약을 맹신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도 이른바 ‘물 건너온 의약품’은 인기 최고였다. 제산제로 알려진 ‘미제(美製) 암포젤 엠’은 아예 만병통치약처럼 소문나 소화기 질환이 없는 사람까지 마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사IN 안희태
의약품 수, 아직도 1만6000개 넘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약제비는 매년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제비로 쓴 돈은 8조4000억원이 넘었다. 보험에 등재된 약품 수도 적지 않아서 1만6721개에 달했다(2007년 7월 현재). 이 정도면 포지티브 리스트(선별 등재 목록)를 실행하는 나라 가운데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7700개, 스위스는 3502개, 오스트리아는 5000개에 불과하니까 말이다(우리나라도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이 정착되면 5000~6000개로 감소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약 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7년 1분기 요양 기관(종합전문병원·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의원)의 처방 건당 약 품목 수는 평균 4.13개였다. 그 중에서 의원이 가장 많았는데 평균 4.24개나 되었다. 의원 가운데 심지어 최고 8개 이상의 약을 처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 많고 탈 많은 항생제·스테로이드제 처방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2005년 현재 처방률이 항생제는 전체 의약품 처방의 26.88%. 스테로이드는 7.77%나 되었다.

약 소비가 늘어나니까 약품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의약품 성분 수는 5085개이다. 의약품 수가 1만6000여 개니까, 한 성분당 3개 이상의 복제약품(제네릭 의약품)이 있는 셈이다. 놀랍게도 21개 이상의 복제약품이 있는 성분도 195개나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1인당 17만7000원어치의 약품을 복용하거나 처치받았다.

ⓒ시사IN 안희태
약제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제약산업에서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제약산업 규모는 9조원에 이른다. 그 가운데 직수입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이다(그 외 복제약품 36%, 라이선스 의약품 20% 등). 그러나 시장 규모가 2배로 커지면 직수입 의약품 비중도 70%를 넘어서리라 전망된다(자료:2007년 한국화학연구원).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 탓에 오리지널 약은 늘고, 값싼 복제약품은 퇴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오리지널 약)을 개발할 확률이 낮다. 이제껏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을 단 11개밖에 개발하지 못했다. 그나마 거의 국내용이 태반이다. 현재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전부 합해야 3500억~4000억원뿐이다. 반면 세계 30위권 안에 드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평균 매출액(약 28억 달러) 가운데 15%를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가랑이가 찢어지게 쫓아 가려 갈 수 없는 형편이다. 신약 개발은 최소 연구 인력 200~300명, 최소 연구비 300억~500억원, 최소 개발 기간 10년을 투자해야 한다(국내 최대 제약사 동아제약조차 연구 인원이 200여 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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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다국적 제약사의 공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세계적 연구자들을 동원해 자사의 특정 의약품과 관련한 질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킨 뒤, 그 결과를 한국을 비롯한 각 나라에 뿌리는 것이다. 자료에는 자사의 특정 약품이 얼마나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 선전문과 다름없는 그 내용을 환자나 일반 대중에게 전파하는 일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다(00쪽 기사 참조). 이렇게 되면 환자나 그 약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특정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들,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의 효능이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약값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지갑이 두둑한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아직 많은 한국인이 값싼 약을 선호한다. 지난 10월 초, 의약품정책연구소가 30 ~69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6%가 약효가 동등하다면 ‘오리지널 약보다 복제약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 87.6% "의사한테 약 정보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쓰는 약이 오리지널 약인지, 복제약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의사로부터 ‘의약품 가격 정보를 제공받았느냐’는 질문에 87.2%가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복제약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어서 30.4%만이 알고 있었다. 의사가 어떤 약을 처방하는지 상관하지 않는 셈인데, 그 바람에 54.9%의 응답자가 약값이 ‘매우 비싸다’거나 ‘비싸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 아직도 약의 선택권이 의사에게 있음이 밝혀졌다. 환자는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약에 대해 질문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던 한오석 의약품정책연구소장은 말했다.

사실 ‘좋은 약’과 ‘나쁜 약’을 구분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싼 약’과 ‘값싼 약’을 나누는 일도 그렇다. 좋은 약은 병을 빨리 낫게 하는 약이다. 값비싸면서 약효 발현 시간이 늦은 약보다, 값싸지만 약효가 극적인 약이 더 좋은 약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약은 따로 있다. 바로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그리고 긍정적 태도이다. 이보다 더 값싸고 효과적이고, 또 쉽게 얻을 수 있는 약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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