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학원에서 학부모를 구워삶기 가장 좋은 영역이다. 왜냐하면 학부모 중 어느 누구도 논술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한 지경이다. 특히 아이를 강남의 논술학원에 보내면 논술도 단기간에 족집게식으로 가르쳐 ‘적중’시키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하지만 최근 논술학원가에서 ‘적중’ 광고를 보기는 매우 어렵다. 왜? 적중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적중이 어려워졌을까?
 

논술고사는 원래 ‘지식’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특히 독해력, 추론능력, 판단·논증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논술을 ‘지식’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유행하고 족집게식 논술 강의가 통했던 것은, 한때 이른바 ‘고전논술’이 대세가 되면서 논술고사의 출제 범위가 주로 서양 철학사상사로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8학년도 서울대 논술고사 문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인용하면서 동물들이 겪는 사건이 인간 사회의 어떤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동물들의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조지 오웰은 주입식 서양 철학사상사 강의 도중에 ‘현대 정치사상’ 편에서 꼭 언급되는 인물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양대 전체주의에 대한 대표 비판서로 언급되는 것이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오웰의 〈동물농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암기한 학생은 서울대 논술 시험장에서 문제를 받아든 순간,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서울대에서 가장 잘 쓴 논술문 한 편을 공개했는데, 그 학생은 글 중간에 포퍼의 책 제목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인용했다. 그 학생이 포퍼의 책을 실제로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설령 들은 풍월을 옮긴 것이라 해도 채점자는 전혀 분간할 수 없지 않겠는가?

논술 공부의 가장 좋은 재료는 ‘시사 주간지’
 

 

이러한 추세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수그러든 것은 출제 범위가 대폭 넓어졌기 때문이다. 요새 출제되는 논술 문제를 살펴보면, 제시문에 그래프·그림·지도가 인용되는 등 난리 법석이다. 거의 ‘아무거나’ 출제된다고 보는 게 맞다. 출제 범위가 이처럼 확 넓어지다보니 더 이상 지식 전달 중심의 논술 강의, 적중을 노리는 요행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논술이 ‘역량’을 측정하고자 하는 본연의 취지에 맞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문과 논술 문제는 제아무리 어렵게 출제된다고 해도 본고사와는 확실히 차별적이다(이과 논술 문제는 본고사적 요소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❾회에 언급하겠다).
 

 

우리나라 모범생은 ‘공부란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놓는 일’이라 믿고, 시험이란 덤프트럭이 모래를 내려놓듯 ‘지식을 답안지에 쏟아놓는 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 모범생 순혈 집단인 명문 외고생들을 보면, 의외로 논술에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은 습관적으로 논술도 지식 중심으로 접근하여, 자기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활용해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학원에서도 지식 중심의 논술 프로그램(이른바 ‘배경지식 강의’)을 선호한다. 많은 학생을 모아놓고 주입식 강의를 제공하는 편이 돈 벌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서울대에서는 매년 지원자의 논술고사 성적을 지역별로 분류해 발표하는데, 지난해까지 연속 수년간 서울 및 대도시 지역 학생보다 군 지역 학생의 평균점수가 더 높았다. 나는 이러한 뜻밖의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논술학원의 잘못된 지도방법도 일조했을 것이라고 본다.

논술의 기초는 ‘읽기’와 ‘토론’이다. 가장 좋은 재료는 시사 주간지. 휴대하기 좋고, 발간 주기가 적당하며, 논술형 문체에 가장 가까운 글로 채워져 있고, 다루는 주제가 수능 언어영역 및 논술 제시문의 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마음이 맞는 친구 2~4명으로 토론팀을 만들어 꾸준히 토론을 진행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1대1 글쓰기 지도를 병행할 것을 권한다. 글쓰기 선생님을 정해놓고, 비교적 소수의 논제를 선정해 여러 번 고쳐 쓰면서 최고 수준의 글이 다듬어져 나오는 ‘감’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명 이범 (교육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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