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고경일씨(위)는 위안부 문제, 이라크 전쟁 반대 만화 등 역사의식이 강한 만화를 그려왔다.

2007, 1997, 1987년. 만화가 고경일씨(39)에게는 10년 단위로 이정표 같은 사건이 있었다. 2007년은 그에게 ‘야스쿠니 풍자만화의 해’였다.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인 그는 11월1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에서 〈야스쿠니 풍자만화전〉을 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주관이었다. 지난 8월에는 학생들과 함께 일본 도쿄에서 〈야만의 벽! NO 야스쿠니전〉을 열었다. ‘야스쿠니 풍자만화가’라 불릴 만하다. 그에게 야스쿠니 풍자만화는 전쟁 범죄에 대한 인류 보편의 ‘상식’을 가늠하려는 시도이다. 만화로 한국인 2만1000여 명과 대만인 2만8000여 명이 강제로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고발하고 풍자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은 그를 ‘열의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왜 이렇게 열심인가? 속물처럼 말하면, 돈이 나오는 일도 아닌데. 대답은 간단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나는 다른 만화가와 달리, 대학에서 월급 받는 만화가이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운명 같은 거니까.”

‘운명적 조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97년. 그는 일본 교토세이카 대학 만화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유학 5년째였다. 교토 시내 미술대학 학생들의 풍자 만화전이 열렸다. 그도 출품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유독 그의 만화만 철거당했다. 옴 진리교를 풍자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지도교수에게 물었더니 ‘안전 때문’이란다. 그 그림 때문에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고 그의 동의 없이 그림을 철거한 것이다.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살려면 세가지 소재를 그리지 않는 것이 좋다. 천황, 우익, 종교단체. 여태까지 이 세가지 소재를 그린 사람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세 가지를 빼면 일본 사회에서 무엇을 풍자하나? 그러고 보니 일본에는 성과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았지만, 시사만화나 만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신문 만평은 삽화 수준이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어 일본의 매스 미디어들은 ‘남경대학살이 날조일 것이다’ ‘위안부로 돈 번 사람도 많다’는 종류의 말들을 중계방송 하듯이 틀어대고 있었다. 그는 미디어에 실망했고, 화가 치밀었다. 지도교수는 “썩은 물은 뚜껑을 닫는다”라는 일본 속담을 인용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자신의 작품 방향을 정했다. 그 세 가지 주제로 줄기차게 만화를 그렸고, 전시회를 열었다. “일본 속담은 일본 속담이고, 우리 속담은 ‘썩은 종기는 도려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웃음)

일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지도교수들은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를 못하기도 했다. 전시회 때마다 일본 우익의 협박 편지가 잇따랐다. 하지만 일본에는 우익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반대하는 일본 활동가들은 그를 도왔다. ‘친구 같은’ 일본인들이었다.

전시회 때마다 일본 우익의 협박에 시달려

그는 87 학번이다. 1980년대는 그에게 역사의식의 자양분이었다. 화가로 성공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그가 미대를 가고 싶다고 하자, “그럼 미술 교사라도 하라”며 청주사범대 미술교육학과를 추천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그는 “미술 운동, 민주화 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충북 제천에 둥지를 튼 이철수 화백에게 1년 동안 판화를 배웠고, 학보사에서 풍자만화를 그렸다. 대학 2학년 때는 ‘전두환·노태우 체포 결사대’ 활동으로 상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술이 운동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궁리했다. “그 당시, 민중미술이 왜 그렇게 무서운 그림이 많은지, 작가의 욕심이나 이념의 과잉 같았다. 실제 민중들이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형식이 무엇인지 고민스러웠다.” 답은 만화였다.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최초의 지역신문인 홍성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2001년에 귀국한 고경일씨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 이라크 전쟁 반대 만화 등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유심히 보아온 민족문제연구소와는 지난해 말부터 인연을 맺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의식이 강한 한 풍자만화가를 발견했고, 이 만화가는 이 단체를 ‘단발성 행사보다, 몇 년씩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는 파트너’로 여겼다.

미국 전시회는 고경일씨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야스쿠니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첫 번째 작업이다. 이제 씨앗을 뿌리는 단계다. “독일 베를린에 나치를 추모하는 시설을 만들고, 네오 나치들이 이를 추모하는 행사를 연다면 유럽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일본에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조차 미국·유럽에 알려져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나 그나 이 문제를 장기 프로젝트로 여긴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유럽 전시회, 외국 만화가들과의 연대 등등. 내년에는 야스쿠니 문제만을 주제로 한 국제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가 인식하게 만드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가 국제 문제화되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한다. 2017년쯤, 그의 모습이 궁금하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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