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신작 〈마더〉를 완성했다. 국내 개봉에 앞서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는데, 현지에 간 한국 기자들이 쏟아낸 〈마더〉 관련 기사는 거의 ‘봉비어천가’ 수준이다. ‘아니, 대관절 어떤 영화기에!’ 처음에는 호기심을 키우더니, ‘아니, 도대체 언제나 볼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인내심을 키우는 영화가 되었다. 언론 시사회 날짜를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만큼 그 실체가 참 궁금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끝내준다’고 소문난 영화다.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김혜자의 영화 출연. 기대가 한껏 부푸는 건 더 당연하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 대로 부푼 기대를 충족해주려면 웬만한 영화로는 턱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윽고 시사회 날. 이러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극장에 들어갔다. 저러다가 배우가 미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 〈마더〉는 ‘기대한 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다. ‘기대한 이상’으로 재미있는 영화다. 백날 ‘기대’란 것만 해온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건 그 인간이 저 까마득히 높은 곳, 가령 830m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꼭대기에다 올려놓았을지 모를 기대치까지도 단숨에 따라잡을 만큼 힘이 센 영화다. 돌이켜보면 〈살인의 추억〉 때에도, 또 〈괴물〉 때에도 기대 이상의 에너지로 우리 가슴을 뒤흔든 감독이었다. 감독 봉준호는 이번에도 하던 대로 했다. 늘 하던 대로 깊이 파고들고, 노상 하던 대로 세게 후려치는 이야기. 이번에는 엄마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있었지만 좀 더 극한까지 가보고 싶었다”라고. “엄마라는 존재가 과연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지”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배우가 김혜자다. 그녀가 드라마에서 대개 엄마였지만 때때로 여자였다는 사실을 봉 감독은 기억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장미와 콩나물’을 양손에 움켜쥐고 서 있는 배우. 엄마의 모성과 인간의 본성을 같은 얼굴 표정 위로 동시에 겹쳐놓을 수 있는 이 드문 재능의 소유자에게 2004년부터 줄기차게 매달렸고, 기어이 〈마더〉의 주인공 혜자 역을 떠맡겼다. 맞다. 이건 떠맡긴 거다. 오직 김혜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에 그가 떠맡아야 했다.

김혜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캐릭터

얘기는 이렇다. 혜자(김혜자)는 좀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과 단둘이 산다. 어느 날, 도준이가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수감된 후, 엄마는 억장이 무너진다. 변호사도 경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엄마가 직접 나선다. 그렇게 밝혀낸 진실도, 그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도 모두 충격적이고 격정적이다. 특히 영화의 중요한 어떤 순간. “넌 엄마 없니?” 이 짧은 대사 하나에 그렇게나 많은 의미를 무거운 추로 매달아놓는 그 순간부터 〈마더〉는 더 이상 단순한 엄마 얘기일 수가 없다. 인간의 핵심을 파고드는 얘기이고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얘기가 된다. 알고 보면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를 긴박감 넘치는 대중 영화로 완성해낸 감독의 재능. 이야기, 이미지, 연기. 그중 어느 것 하나 실망시키지 않는 세련된 영화의 쾌감. 그것이 〈마더〉를 참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박찬욱 감독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든다면 봉준호 감독은 우리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든다. 내가 두 감독을 모두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주 솔직히, 봉준호 감독 영화를 조금 더 많이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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