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극장 제공안숙선 명창(위)은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애기 명창’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2007년 국악계에는 유달리 ‘국악 입문 반백 년’을 축하하는 공연이 잦다. 지난봄 선소리산타령 인간문화재 황용주 명창의 50주년 공연을 시작으로,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주역들인 김덕수와 이광수, 최종실 명인이 차례로 국악 입문 50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성대하게 치른 바 있다. 또 정악 피리의 교과서 정재국 명인 역시 지난 4월 국악 입문 50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가졌다. 판소리 적벽가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과 여창가곡 인간문화재 조순자 명인 역시 소리 입문 50년을 맞았다. 광복을 전후해 큰 터울을 두고 태어나 나이 차이는 크지만 공교롭게도 1957~1958년 비슷한 시기에 국악계에 입문한 뒤 민속악과 정악 제 분야에서 절치부심 노력해 일가를 이룬 대명인`명창들이다.

광복 후 그리고 한국전을 전후해 예술계로 뛰어든 국악인이 드물었다. 반면 195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예술계로 뛰어든 데는 1955년 개소한 국악사양성소(국립국악고 전신)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의 재건이 웬만큼 진행되자 재건 우선순위에서 밀려 수년간 방치되었던 전통예술의 제도적 보호에 대한 각계의 요구가 늘어났고 이에 정부가 전국국악경연대회, 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을 장려하고 신설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이들 외에도 많은 명인·명창들이 국악 입문 50년을 맞아 2007년 한 해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민속음악의 대표 주자인 판소리와 민요계의 프리마돈나 안숙선과 김금숙 명창도 데뷔 50년을 맞았다.
안숙선 명창은 11월2~4일 사흘간 서울 정동극장에서 ‘아름다운 동반’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소리 길로 인도한 가야금산조의 강순영 명인과 함께 판소리 입문 50년 축하 공연을 가졌다. 김금숙 명창은 11월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소리길’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소리 길을 완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스승 이은주 명창과 함께 민요 입문 50년 축하 공연을 갖는다.

1949년 기축년 소띠 동갑인 이 두 명창은 판소리와 민요라는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지만 소리 역정만은 놀랍도록 닮았다. 일가친척 대부분이 국악에 종사하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한 안숙선 명창과 달리 김금숙 명창은 완강한 부모의 반대에 못 이겨 하마터면 국악을 포기할 뻔했던 전력이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국악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각자의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동갑내기 두 명창! 이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들의 소리 길을 톺아본다.

남원의 애기 명창 안숙선, 서울의 소녀 명창 김금숙

안숙선 명창은 1949년 9월5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의 1인자 강순영 명인이 그의 이모이고 동편제 판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강도근 명창이 그의 외삼촌이다. 국악인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가야금과 소리를 익힌 안 명창은 이모 강순영 명인의 가야금소리를 배냇소리 삼아 아홉 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남원국악원에서 학습했다. 일찍이 천재 ‘애기명창’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안 명창은 19세에 상경해 김소희, 박봉술, 정광수, 성우향 등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사사했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뛰어난 목소리와 연기력을 인정받아 창극 스타로 자리 잡았으며 남원 춘향국악제 대통령상을 수상한 1986년부터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차례로 완창 발표했다. 박동진, 오정숙에 이은 세 번째 완창이었다.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수상 경력과 공연 경력도 화려하다. 해외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 소리꾼이다.

김금숙 명창은 1949년 7월23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딸이었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은주·김옥심 명창의 민요에 반해 소리꾼이 되기로 마음먹고 부모 몰래 이창배의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찾아가 소리에 입문했다. 당시 10세였던 소녀는 스승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부모의 반대로 그 뜻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소리를 하지 않으면 단명할 팔자’라는 한 무속인의 말에 다시 청구학원에 보내져 1965년 제1회 졸업생 영예를 안게 된다. 1964년 제3회 전국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녀 명창’으로 이름나며 1970년대부터는 명인명창대회, 중요무형문화재 종목발표회에서 노명창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76년 이은주 문하의 첫 전수 장학생이 되었으며 1983년 전수조교로 인정받았다. 1999년에 경기민요 사상 첫 12잡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고, 이듬해 12잡가 음반을 발매했다.

닮은꼴 그 하나.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발표회’ 대 ‘경기 12잡가 완창 발표회’

안숙선 명창의 국악사적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1986년부터 시작된 고행과도 같은 판소리 다섯 바탕 발표회이다. 비록 가야금병창 보유자이기는 하지만 안 명창은 판소리사에 더 많은 신화를 구축해가고 있다. 스승 박봉술의 적벽가를 시작으로 매년 한 바탕씩 완창 발표회를 가졌고 그 험난한 여정은 1990년이 되어서야 끝났다. 한 바탕 완창도 힘들어 반창 발표회를 하는 소리꾼들이 수두룩한 현실이고 보면 안 명창의 다섯 바탕 발표회는 개인적으로도 또 국악사적으로도 매우 명예롭고 소중한 기록이라 할 것이다.

ⓒ정동극장 제공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금숙 명창(위)은 15세 때부터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금숙 명창 역시 지난 1999년 소리꾼으로는 처음으로 12잡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1975년 12잡가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판소리 완창 발표에 견줘 그 가치를 폄하하곤 하나 판소리와 달리 12잡가는 정가의 영향을 받은 탓에 시종일관 정좌(正坐)를 유지한 채 아니리나 발림 없이 소리만으로 끌어가야 하며 발성 또한 악을 쓰거나 오물거리지 않아야 한다. 한 곡당 평균 10여 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오히려 판소리 완창 못지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박동진·오정숙 명창의 다섯 바탕 완창이 1970년대에 이뤄진 것에 비하면 20년 이상 늦은 완창 발표회이긴 하지만 이후 민요계에 12잡가 완창 발표회가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 데 김 명창의 발표가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국악사에 이정표 하나를 만든 것이다.

닮은꼴 둘. 첫 음반 취입은 1978년 유니버셜 레코드사에서

안숙선·김금숙 명창의 닮은 구석은 또 있다. 첫 음반 취입이 1978년 유니버셜레코드사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시 안 명창은 음반 두장을 취입했는데 1집은 가야금병창 독창집으로 단가인 호남가, 녹음방초, 청석령 지날제를 비롯해 수궁가, 흥보가, 춘향가 중 눈 대목을, 2집에는 친동생 안옥선과 함께 가야금병창으로 신민요를 취입했다. 김 명창은 이보다 앞서 같은 해 4월에 전숙희 명창과 함께 두 장의 민요 음반을 취입했다. 노래가락 전집과 창부타령 등의 민요가 담긴 음반 두 장이었다. 이후 김 명창은 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 장원을 차지했고, 안 명창은 1986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안 명창은 1989년에, 김 명창은 1990년에 각각 가야금병창과 경기민요의 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았다.

닮은꼴 마지막, 자식에게 대물림한 우리 음악

이전 민요계는 대물림이 없었다. 민요계에 대물림 현상이 발화한 것은 김금숙이 여덟살 된 딸 송은주씨(37)에게 시조를 가르치면서부터였다. 민요계의 차세대 리더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송은주는 가수 보아, 영화감독 김태용 등과 함께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2007년도 올해의 젊은 예술가 상을 수상했다. 이화여대 박사를 수료할 정도로 실기와 이론에 능하다. 송은주는 이미 그녀의 딸 정유리양(10)에게 민요의 맥을 전수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민요사상 최초로 3대 소리꾼이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안 명창의 딸 최영훈씨(31)는 국립창극단 거문고 주자로 이미 민속악계에서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대표적인 ‘재목’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했으며 황득주, 이재화에게서 한갑득류 거문고를 사사했다. 기악뿐만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소리에도 뛰어나며 안 명창의 웬만한 소리는 그녀의 거문고 소리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명 김문성(국악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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