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제공이별학교(위) 등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면, 죽음을 좀 더 편안히 맞을 수 있다.
18년 전.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도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침대에서 하루하루 마른 나무처럼 여위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임종의 날이 오리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한 듯, 정신이 또렷하던 어느 날 재산을 정리하고 (얼마 되지 않지만) 현금을 나누어 4남매의 통장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380만원이 든 통장을 내밀었다. “장례비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등을 돌린 채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한 죽음이건만, 아버지도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극복하지 못한 듯했다. 언젠가는 무심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라는 말로 삶에 대한 미련을 얼핏 내비치기도 했다. 혼수상태에서 허공을 향해 공포에 질린 시선을 던지거나, 잠꼬대처럼 무언가 끊임없이 웅얼웅얼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오롯이 떠오른다.

‘죽음 준비’가 가져다주는 네 가지 이점

아름다운재단이 5월28일부터 이틀간 ‘아름다운 이별학교’(이별학교) 문을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병상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였다. 프로그램을 일별해보니 “만약, 아버지가 이별학교 교육을 받았다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 편안히, 더 홀가분하게, 더 안락하게 세상을 뜨셨을까. 지금으로서는 그 답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별학교의 목표와 강의 내용을 보면 가늠해볼 수는 있다.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은 이별학교 등을 통해 미리 죽음을 준비하면 “주어진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고,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진홍 교수(한림대 과학원·종교학)는 지난해 이별학교 강좌에서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네 가지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더 사랑하고, 게으름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유서 등을 미리 작성해) 내 혈연을 더 편하게 하고, (장기 기증·유산 기부 등을 통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막 숨이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정면으로 죽음을 마주 본다. 그 결과는 후회와 번민, 절망과 두려움, 당황과 슬픔, 불행한 죽음뿐이다. 가족도 다르지 않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죽음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다가, 마침내 그분들의 얼굴에 찔레꽃처럼 하얀 천이 덮이고 나서야 죽음에 대한 준비 소홀과 불효를 깨닫는다. “이별학교는 그 같은 슬픔과 미련을 덜어주고, 바로 지금부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준다”라고 김현아 이별학교 간사는 말한다.   

수업 내용은 크게 인생 수업, 이별 수업, 나눔 수업으로 나뉜다. 그중 인생 수업의 ‘나를 돌아보기’ 강좌는 전순영 서울미술치료연구소장이 맡는데, 자신이 그린 그림을 통해 삶을 반추하게 된다. 이별 수업 ‘죽음 앞에 선 인간’에서는 호스피스 손영순 수녀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 등을 얘기하며, 죽음을 앞둔 사람을 어떻게 보듬고 위로해야 할지 알려준다. 직접 유언장을 작성해보는 ‘유언장 이야기’ 수업도 들을 만하다. 나눔 수업에서는 장기(臟器)와 유산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수강생 스스로 기증할 것이 없는지 돌아본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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