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자 크리스토퍼 시가 쓴 〈이코노믹 액션〉에 따르면, 사스가 기승을 부리던 2003년 상하이에서 사스에 감염될 확률은 미국 시카고에서 플로리다 왕복 중 자동차 사고가 날 확률보다 훨씬 낮았다. 저자는 “당시 사람들은 마스크는 꼭꼭 챙겨 쓰면서도 안전벨트를 매는 데에는 소홀했다”라고 말했다. 감염 공포가 퍼지면 합리적인 사고는 별반 힘을 쓰지 못한다. 신종 인플루엔자 공포가 확산된 2009년 봄, 세계 곳곳에서 평소라면 이해되지 않을 일이 많이 벌어졌다.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지구촌 풍경을 나라별로 정리했다.

●이집트:이집트의 돼지는 이제 다 죽게 생겼다. 지난 5월2일 이집트 정부가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자국의 모든 돼지 30만 마리를 도살 처분하겠다고 밝히고 강제집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양돈 농민들이 크게 반발해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전국의 모든 돼지를 죽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해 양돈 농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율법에 따라 돼지고기 유통과 소비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에는 돼지가 딱 한 마리, 카불 동물원에 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선물한 이 귀한 돼지에게도 신종 플루의 불똥이 튀었다. 다른 동물이나 관람객에게 플루를 옮길 염려가 있다면서 동물원 독방에 격리 수용된 것이다.

●멕시코
:한 축구 선수가 경기 도중 “나 돼지독감에 걸렸다”라며 상대방 팀 선수 얼굴에 침을 뱉고 콧물을 뿜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수비수 헥토르 레이노소가 지난 5월5일 칠레 에베르톤과의 리베르타도레스컵 조별 리그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 세바스티안 펜코에게 한 짓이다. 상대방을 겁주려고 한 거짓말이었다며 뒤늦게 사과했지만, 레이노소는 남은 전 경기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일본:아직 감염자가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신종 플루 공포가 확산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구석구석에 소독약이 비치되는 등 방역이 철저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가 단순 발열 환자까지 진료를 거부하는 과잉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이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고, 또 어떤 이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내 관광지를 들렀다는 이유로 진찰을 거부당했다. 지난 5월2일부터 사흘간 도쿄에서만 진료 거부 민원이 100건가량 접수되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