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창궐한 돼지독감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돼지독감 발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30년에 돼지독감이 처음 보고된 바 있다. 돼지독감은 ‘인수공통전염병’의 하나로 A형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돼지가 인간에게 옮기는 전염병이다. 처음에는 돼지만 걸렸고, 인간이 감염되더라도 증세는 미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 인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제는 돼지를 거치지 않고 인간끼리 전염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사스·조류독감·변종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인간광우병) 등 동물과 인간의 종간 벽을 허물고 인간에게 감염되는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홍역·결핵·천연두·백일해·AIDS 등도 동물에서 유래한 질병들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감염력이 높아지고 인간이 감염된 후에는 인간끼리 전파될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을 추측할 수 있다. 야생 동물이 가축이 되면서 인간과 접촉할 기회가 늘어났고, 동물을 식용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대량생산이 필요했으며, 이로 인한 인위적인 사육 환경 때문에 동물이 각종 스트레스와 질병에 시달릴 위험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동물이 가지고 있던 병원체가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해외 여행객 증가로 국가 간 인적 교류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어린이는 돼지 만지지 말아야

이번에 주범으로 지목된 돼지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비롯해 다양한 병원체의 혼합 용기(mixing vessels)로 알려져 있다. 즉, 각종 병원체가 돼지 몸속에 터를 잡은 뒤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변종을 만들어 더욱 강력한 병원체를 생산하는 기지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돼지 사육 종사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보유한 비율이 높다고 알려졌다.

돼지독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독감 예방 원칙을 따르면 된다.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은 자신과 돼지의 위생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 돼지독감에 걸린 돼지고기를 익혀 먹으면 문제 될 것 없지만 돼지고기를 조리하는 사람의 손과 조리 도구가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놀이공원이나 농장 등에서 돼지를 만지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동물이나 사람의 체액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평소에 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며 운동과 영양 섭취에 신경 쓰는 일이다. 이번 돼지독감 유행이 분명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공황 상태에 빠질 필요는 없다. 국민의 의식 수준과 의료 수준이 높고 기본 의료시설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자명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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