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옌둥 공산당 통일선전부장(앞)은 차기 부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정계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성 총서기나 총리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마디로 정계의 ‘여인천하’ 시대가 목전에 바짝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지난달 열린 공산당 전당대회인 17차 전국대표대회(17전대)에 참석한 여성 대표들의 수가 이 현상을 잘 말해준다. 전체에서 20%가 넘는 445명의 여성이 대표로 뽑히는 기염을 토했다. 5년 전인 16전대보다 무려 63명이나 늘었다.

당·정의 부장(장관)급 이상 진출이 가능한 최고위급 인재 풀인

ⓒAP Photo전인대 부위원장으로 유력한 천즈리(왼쪽).
당 중앙위원회 위원 선출자 수 역시 놀랍다. 16전대 당시 5명에 비해 2.5배 이상인 13명이 중앙위원회에 진입했다. 물론 전체 정원인 204명의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13명은 여전히 적은 수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내년 3월 초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우리의 국회에 해당) 11기 1차 회의에서 당·정 고위급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13명 중 유일하게 정치국(정원 25명)에까지 진출한 류옌둥(劉延東·62) 위원 겸 당 통일선전부장이 주목된다. 그녀는 내년 11기 전인대 1차 회의에서 정치 2선으로 물러날 예정인 우이(吳儀·69) 부총리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녀가 우이 부총리보다도 더 비중 있는 자리로 승

쑹슈옌(위)은 ‘여성 후진타오’의 길을 걷고 있다.
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만약 이 전망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국가 부주석이 그녀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류옌둥은 미인형의 용모에서 보듯 부드러운 인상이 특유의 장점이지만 강단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이다. 권력의 핵으로 불리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생활을 오래 한 덕에 조직의 귀재로도 불린다. 엔지니어를 거친 뒤 베이징시 간부, 중앙사회주의학원 당 서기 등을 지낸 이력 역시 여성 정치인의 좌장이 되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의 교육부장(교육부장관)을 거쳐 교육 담당 국무위원을 맡고 있는 천즈리(陳至立·64) 위원 역시 녹록지 않다. 16전대에 이어 다시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여세를 몰아 위상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직이 부장과 부총리의 중간

우아이잉(왼쪽)은 부총리급으로 승진할 듯하다.
자리인 만큼 부총리 급으로 승진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는 국회 부의장에 해당하는 전인대 부위원장 자리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녀는 장쩌민(82) 전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상하이시 서기를 맡았던 1980년대 후반 시 선전부장으로 보필한 인연을 갖고 있어 정치적 배경도 탄탄하다.

쑹슈옌(宋秀岩.52) 중앙위원 겸 칭하이성 성장은 중앙위원회에 진입한 여성 중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리다. 이 꼬리표를 잘만 극복하면 ‘여성 후진타오’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녀는 내년 3월 인사 때 국무원의 부장급으로 수평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최소한 5년 내에 부총리 자리를 내다볼 수도 있다. 미래의 여성 총리감으로 당 지도부에서 적극 키운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인

ⓒReuters=Newsis덩난 과학협회 부주석(앞)은 덩샤오핑의 딸이다.
쑹슈옌은 후 국가주석 겸 총서기처럼 공청단에서 잔뼈가 굵었을 뿐 아니라 대학도 당 학교인 중앙당교를 나왔다.

유일한 여성 각료인 우아이잉(吳愛英·56) 위원 겸 사법부장 역시 나이로 볼 때 더 큰 활약이 기대된다. 현직인 사법부장을 거치고 나면 부총리 급으로의 영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돈다. 그녀는 초대 스량(史良)에 뒤이어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사법부장으로 발탁된 인물이기도 하다.

덩난(鄧楠·60) 위원 겸 과학협회 부주석은  덩샤오핑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되고 있다. 과학기술부 부부장(차관)으로 있다가 과학협회 부주석으로 옮겨 사실상 정치 생명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17전대에서 기사회생, 내년 11기 전인대 1차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분위기로는 그녀가 평소 노렸다는 과학기술부 부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외에도 내년 11기 전인대 1차 회의를 전후해 활약이 기대되는 여성 정치인으로는 우윈침크(烏雲其木格·64), 쑨춘란(孫春蘭·62), 리빈(李斌·63), 리하이펑(李海峰·58), 양옌인(楊衍銀·60), 선웨워(沈躍躍·50), 황칭이(黃晴宜·67), 마원(59) 위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중앙위원에 합당한 자리가 마련될 경우 남성 못지않은 능력과 추진력으로 우먼 파워의 돌풍을 일으킬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연소 여성 중앙위원인 선웨웨 위원은 이점을 당정 지도부에 어필할 경우 전격 발탁돼 쑹슈옌 중앙위원 겸 칭하이성 성장에 못지않은 기염을 토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장시성 당위 서기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여성 정치 지도자 400여 명 맹활약

중국 정계의 여풍은 중앙위원들보다 선배 급인 원로들의 존재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철낭자(鐵娘子)라는 별명을 가진 우이 부총리는내년에 정치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녀는 각계의 원로들로 구성되는 정치협상회의(정협)의 부위원장으로 이동, 여성 정치인의 대모를 자임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중국 최고의 여걸로 불렸던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점에서는 전국 최대 여성 조직인 부녀연합회의 천무화(陳慕華·85) 명예 주석, 구슈롄(顧秀蓮·72) 주석, 허루리(何魯麗·69) 전인대 부위원장, 하오젠슈(72) 정협 부위원장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신셴셰예(新鮮血液), 즉 미래를 짊어질 젊은 피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그룹이다. 전국 700여 개의 각급 시장과 부시장 약 400명 전후의 차세대 여성 주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빠르면 다음 전당 대회가 열리는 2012년을 전후해 이들의 상당수가 급부상할 것으로 점쳐진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여권이 강하다. 측천무후와 서태후 같은 여걸을 배출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여기에 남녀평등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고 있다. 또 최근 들어서는 당정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사회 각 방면에서 여성 우대 정책을 적극 펴고 있다. 이래저래 정계에 여풍이 거세게 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거론되는 미국, 여성 총리와 대통령이 흔한 유럽에 비하면 중국 정계에서의 여성들의 활약은 아직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성들의 정계 진출 바람이 계속 이어지고 당정 최고 지도부가 이를 유도하는 자세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분위기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중국 정계에도 여성이 수하에 수많은 남성들을 거느리면서 나라를 이끌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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