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연트럼프 인터내셔널 타워의 2900만 달러짜리 콘도에는 방이 11개, 화장실이 6개나 있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는 네모반듯한 모양이다. 센트럴파크 직사각형 꼭지점 네 곳 중 남서쪽 꼭짓점이 뉴욕 맨해튼에서도 가장 비싼 집들이 모인 곳이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재기에 성공하는 발판이 됐던 ‘트럼프 인터내셔널 타워’도 이곳에 있다. 트럼프 타워에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사는 타운하우스까지 길게 이어지는 59가의 ‘콘도 골목’은 맨해튼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곳들이다.

필자는 ‘트럼프 타워’ 47층의 200평 규모 콘도에 손님 자격을 가장해 들어가봤다. 집 하나 보러 가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갖가지 증빙서류를 요구하고 확인 전화도 대여섯 차례 걸어왔다. 콘도 한 채의 가격은 2900만 달러. 방이 11개에 화장실이 6개다. 분양가 200만 달러에 못 미쳤던 방 2개짜리 콘도가 지금은 600만 달러가 넘는다.

필자 일행은 자신을 ‘새라’라고 소개한 유태계 부동산 브로커와 함께 본격적으로 집 구경에 나섰다.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의 측근 가운데 하나로 ‘트럼프 타워’의 관리와 판매를 총책임지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47층을 가리키며 조용히 서자 생각보다 수수한, 짧은 복도가 나온다. 현관에서 딸가닥 소리가 나며 새라의 비서가 문을 연다. 이 콘도에는 입주자가 드나드는 정문 외에 추가로 문 2개가 더 있다. 집안일을 하는 고용인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지금 밟고 계시는 마루는 1830년 프랑스 샤토 지방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브로커 새라의 집 소개 방법이 독특하다. 화장실에 가니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에서 이음새를 찾아보라”더니 “이음새 없이 통판으로 들여온 그리스산 대리석”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벽을 금박으로 장식한 화장실 변기에 앉아보라는 민망한 주문도 한다. 콜럼버스 서클이 내려다보인다는 거다. 박물관 작품 설명을 듣는 기분으로 1시간 동안 방 9개와 화장실 6개, 거실 2곳과 식당 등을 들여다보고 나서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왜 1년 동안이나 집이 안 팔렸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 타워에 사는 사람들은 세계를 움직이느라 바쁜 사람들이다. 가구 하나만 따로 팔 수도 있기 때문에 가격을 산정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이 콘도 1층에는 뉴욕 최고의 요리사 ‘장 조제’의 레스토랑이 있다. 이 세계적인 요리사의 음식을 트럼프 타워 주민은 배달해서 먹는다. 그것도 24시간 가능하다. 주방장과 인사를 시켜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유리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마냥 트럼프 타워를 빠져나왔다.

기자명 뉴욕=한정연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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