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연뉴욕의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은 변호사.중소기업 사장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서울에서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김명철씨(47.가명)는 7월6일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부인이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인 부동산업자와 함께 센트럴파크 주변 콘도 세 곳을 하루 동안 둘러본 김씨는 18억원짜리 콘도를 사기로 했다. 현지 주택담보대출 전문은행, 함께 일하는 한인 브로커와 상담해 대출 조건까지 결정하고 8일 뉴욕을 떠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 틈을 타고 뉴욕 맨해튼 부동산을 사려는 한국인이 늘어난다.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미시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최근 “내년 말에 주택 가격이 20% 폭락해 3년 내 미국 경제성장률이 1.5%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구하기 힘든 고가 부동산이 시중에 매물로 나온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다급한 마음에 중개업자 없이 스스로 직접 내놓는 피스보(FSBO) 주택도 지난해에 비해 8%나 늘었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뉴욕 부동산 업체들은 외국인 특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맨해튼의 일부 고급 콘도는 서울에 분양 사무실을 냈다.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뉴욕의 뉴스타부동산 뉴욕지사와 이투웨스트도 서울에 분양 사무실을 내고 맨해튼 고급 콘도를 분양하고 있다. 한 뉴욕 부동산 회사 사장은 “한국 분양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소기업 사장·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미국 유학 경험자가 많다”라고 말했다. 

뉴욕 부동산업자와 한국 강남 부자들이 만난 계기 중 하나는 한국 정부의 해외 부동산 취득 자유화이다. 지난해 3월 주거용 해외부동산 취득한도가 폐지됐고 투자용 부동산 취득한도도 완화됐다. 투자용 부동산 취득한도 제한은 내년 초에 폐지될 예정이다. 미국은 부동산 취득세가 없고 1가구 2주택 제한을 두지 않아 한국 부자들이 절세 효과를 노리고 맨해튼 콘도를 사기도 한다.

뉴스타부동산 뉴욕지사는 미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엑스텔로부터 콘도 세 동을 불하받아 한국 시장 독점 분양권을 손에 넣었다. 맨해튼 리버사이드 블러바드를 따라 63가에서 65가까지 조성된 트럼프 플레이스 단지는 현지 유명 건설회사 코코란이 시공을 맡은 고급 콘도로 세 동 가운데 두 동이 분양 중이다. 올 연말께 입주가 시작될 예정인 에이버리(Avery) 콘도는 현재 70%가량 분양이 완료된 상태다.

뉴저지에 있는 교포 부동산 개발회사 이투웨스트도 ‘W 뉴욕 다운타운 콘도’를 한국에서 독점 분양한다. 분양가는 최저 86만 달러에서 최고 257만 달러. 안상모 뉴스타부동산 뉴욕지사 사장은 “해외부동산 취득 전면 자유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맨해튼 콘도를 사려는 한국인의 문의 전화도 크게 늘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는 한국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물론 ‘묻지마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는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미국 부동산 업체 중에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한국인을 노리고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세금과 관리비 내역도 꼼꼼히 따져볼 것을 조언한다. 또 한국인이 너무 신규 분양에만 몰리는 풍조도 경계한다. 검증된 헌 집을 사는 것도 방법이다.

아무리 맨해튼 콘도 가격이 싸졌다고 해도 여전히 수십 억원을 호가한다. 전미부동산협회에 따르면 9월 맨해튼 콘도의 평균가격은 146만8213달러로 8월보다 겨우 3% 내렸다. 1월부터 9월까지 맨해튼 콘도 매매가 평균을 내면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평균 9% 올랐다. 최근 매달 1~3%씩 가격이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폭락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황금의 도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맨해튼 콘도 시장은 지리적 구조상 재고가 적고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민자로 인해 항상 공급보다 수요가 높다고 분석했다.

올해 8월까지 한국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가장 비싼 곳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223㎡로 8월30일 49억원에 팔렸다. 비슷한 넓이의 아파트가 맨해튼에서는 평균 36억3787만원(400만8240달러)이다. 얼핏 싼 것 같지만 뉴욕에서 최고가 아파트는 180억원을 을 훌쩍 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다만 맨해튼에 100평대 콘도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무척 드물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자명 뉴욕=한정연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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